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사공 많아진 KS인증, 부실화 막아야

양형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2.20 17:27

수정 2015.12.20 17:27

대전 대덕연구개발특구에 위치한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 가면 정문이 7개의 기둥으로 이뤄져 있다. 7개의 기둥은 7개의 표준 단위(㏖, K, S, ㎏, A, m, ㏅)를 상징한다. 표준연 1층에 들어서면 눈에 띄는 또 다른 물건이 하나 있다. 바로 유척이다. 유척은 눈금이 정교하게 새겨진 사각기둥 형태의 놋쇠자다. 유척은 조선시대 암행어사가 마패와 함께 지녔던 필수품이다.
4면에는 각각 예기척, 주척, 포백척, 영조척, 황종척 등 용도별로 다른 눈금이 음각돼 있다. 암행어사에게는 2개의 유척이 주어졌다. 하나는 남형 방지에 쓰였다. 다른 하나는 도량형을 속여 세금을 징수하는 행위 방지에 쓰였다. 유척은 암행어사가 휴대한 'KS인증 표준자'였던 셈. 표준을 중요하게 여긴 조선 조정의 정책적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표준은 조선시대에만 중요했던 게 아니다. 우리나라는 고도경제성장기에 품질향상을 위해 한국산업규격(KS)제도를 도입했다. KS는 1962년 제품의 품질 개선과 표준화를 위해 만든 국가규격이다. KS는 일본의 JIS(Japanese Industrial Standards)를 본뜬 제도다. 미국은 UL(Underwriters Laboratories)이 있다. 유럽은 CE(Certificate of Europe)가 있다.

KS인증은 지난 1998년부터 한국표준협회가 단독 KS인증기관으로서 인증 업무를 해왔다. 그러던 중 17년 만인 지난달 30일 정부는 KS인증제도에 변화를 줬다. 단독체제로 운영되던 KS인증기관을 복수화시킨 것. 그 일환으로 정부는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과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 등 3개의 기관을
[데스크 칼럼] 사공 많아진 KS인증, 부실화 막아야

KS인증기관으로 지정했다. 정부는 복수 KS인증체제가 도입되면 기업이 KS인증기관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 시간·비용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KS인증서비스의 질과 기술이 향상되는 것도 이점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복수 KS인증체제 시행으로 인해 발생한 부작용에 대한 우려는 적지 않다. 복수 KS인증기관이 KS인증을 하면 과당경쟁이 일어날 수 있다. KS인증기관 간 과당경쟁은 부실 인증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복수 KS인증체제는 자유무역협정(FTA) 시대에 '최후의 무역 방어막'으로 여겨지던 KS인증을 약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KS인증 방어막이 얇아지면 저품질 외산제품이 쉽게 한국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특히 한·중 FTA 시대에 중국산 저가제품들은 KS인증을 수월하게 통과하면서 한국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 피해는 국내 기업의 몫이다.

복수 KS인증체제는 인증을 통해 무역장벽을 높이려는 해외 국가들의 행보와도 대비된다. 미국을 비롯해 유럽연합(EU), 중국 등은 KS와 유사한 인증을 단독기관 형태로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그나마 일본만이 복수의 인증체제로 운영해왔다가 단독으로 복귀하려는 분위기란 것.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법이다.
사공이 많아진 KS인증이 부실해지면 한국경제도 위험해진다. 산업품질 인증은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
정부는 조선시대 암행어사가 지녔던 유척을 들이대는 자세로 복수 KS인증기관을 엄격히 관리감독해야 한다.

hwyang@fnnews.com 양형욱 산업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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