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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주영 칼럼] 저성장 시대를 사는 법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2.21 17:15

수정 2015.12.21 17:15

성장판 닫힌 한국경제 이대로 가면 제로성장 못 면해
비효율 구조 깨는 것이 구조개혁
[염주영 칼럼] 저성장 시대를 사는 법

"한국경제가 지쳤다. 갈 길이 먼데 퍼질 대로 퍼져 뛸 생각이 없다. 아무리 떼밀어도 도무지 반응이 없다." 퇴임을 목전에 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퇴임 소감을 묻는다면 아마도 이런 말을 하지 않을까 싶다. 그가 경제수장으로서 받은 마지막 성적표는 성장률 2.7%(정부 전망치)다. 그는 재임기간 내내 경제를 죽어라고 떼밀었다.
기관차처럼 힘차게 달려주기를 고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느리게 걷는 정도 이상의 응답을 듣지는 못했다.

한국경제가 성장을 멈추려 한다. 아직도 한참 자라야 할 나이인데 성장판이 닫히려 한다. 역대 정부의 재임기간 평균 성장률을 보면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박정희(9.3%), 노태우(8.3%), 김영삼정부(7.4%)까지는 7% 이상의 고도성장을 누렸다. 이후 김대중(5%), 노무현정부(4.3%)를 거치면서 4%대로 떨어졌다. 이명박정부(2.9%)에서는 2%대까지 낮아졌다. 박근혜정부 3년간도 2%대다.

한국경제의 성장률이 가파르게 추락하고 있다. 지금까지 정권이 여섯 번 바뀌는 동안 성장률이 9%대에서 2%대까지 떨어졌다. 평균 해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1%포인트 이상 낮아졌다. 이런 추세라면 차차기 정권쯤엔 성장률이 0%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전망은 이보다 조금 높긴 하다. 10년 후인 2026년의 잠재성장률을 1%대로 전망한다. 그러나 잠재성장률이 인플레이션 압력 없이 달성 가능한 성장률의 상한선임을 감안해야 한다. 실제 성장률은 이보다 낮아질 것이다. 성장률 얘기를 장황하게 하는 이유는 저성장을 받아들이고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한국경제가 향후 10년 안에 '제로성장시대'를 맞게 될 것이란 전망은 무리가 아니다. 요즈음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타산지석으로 삼자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과연 타산지석일까. 10년 후 우리의 미래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 아닐까. 이대로 가면 제로성장 시대를 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한국의 10년 후 미래라는 전제 아래 삶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올해 성장률 3%를 고수하기 위해 총력전을 폈다. 그러나 당장의 성장률이 3%대냐, 2%대냐가 그다지 중요한 문제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한국경제의 성장률 하락을 멈추게 하는 에너지를 찾아내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경제는 진흙탕에 빠진 자동차와 같다. 가속페달을 밟아도 헛바퀴만 돌 뿐 빠져나오지 못한다. 이런 때는 힘센 트럭에다 밧줄로 연결해 끌어내야 한다. 크레인이 와서 통째로 들어내야 할지도 모른다. 가속페달이 단기 부양책이라면 트럭이나 크레인은 구조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구조개혁은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가속페달만 죽어라 밟아대고 있다. 지금 상황에선 가속페달은 밟을수록 손해다. 타이어만 닳고 한 발도 전진하지 못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기름과 시간 낭비에다 차의 수명도 짧아진다. 이런 것들이 구조개혁을 회피한 대가로 감수해야 하는 비효율이다. 헛바퀴 돌지 않고 지면과 맞물려 돌아가도록 구조의 틀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구조개혁의 핵심은 기존의 비효율적 구조를 깨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원의 낭비와 비효율을 막아야 한다. 공공과 노동, 금융, 교육 등 4대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사회 전반의 사고와 문화에 밀접하게 연관된 문제다. 교육개혁을 예로 들어보자. 대학원까지 나와서 치킨집을 창업하거나 대리운전을 하는 나라의 장래가 밝다고 할 수는 없다. 치킨집과 대리운전이 천한 직업이라서가 아니다. 교육이 수요자에게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현실적 구조가 문제다.
노동 분야도 마찬가지다. 젊은이는 일자리가 없어 놀고 있고 노인들은 쉬지 못하고 일해야 하는 상황은 분명 모순이다.
이런 제도적, 문화적 장애와 모순을 해결하는 것이 구조개혁의 핵심이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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