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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석학에 듣는다] 유가와 세계경제 성장

송경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2.25 17:07

수정 2015.12.25 17:07

[세계 석학에 듣는다] 유가와 세계경제 성장

올해 경제의 가장 큰 놀라움 가운데 하나는 경악할 정도의 국제유가 하락이 세계 경제 성장세를 크게 끌어올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6월 배럴당 115달러가 넘던 유가가 11월 말 현재 45달러까지 떨어지며 붕괴됐지만 대부분 거시경제 모델은 글로벌 성장에 미친 영향이 예상보다 적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0.5% 정도에 그쳤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희소식은 이처럼 반갑지만 완만한 이 효과가 2016년에도 이어질 것이란 점이고, 나쁜 소식은 저유가가 주요 석유수출국을 옥죄는 정도가 훨씬 더 클 것이라는 점이다.

최근 유가하락은 1985~1986년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이 시장점유율 재확보를 위해 감산을 뒤집기로 결정한 데 따른 공급발 하락과 대동소이하다. 또 2008~2009년 세계 금융위기 여파로 수요가 붕괴했던 상황과도 비견된다. 수요감소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 경우 유가는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외부요인이기보다 자동적인 안정장치에 더 가깝다. 공급충격은 대조적으로 상당한 긍정적 효과를 내야만 했다.

2014~2015년 유가 충격은 이전 두 차례 사례처럼 딱 잘라 구분되지는 않지만 동력은 수요와 공급 양 요인으로 대략 균등하게 나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내수에 다시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중국의 성장 둔화가 상품가격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새로운 석유공급 원천 역시 그보다 덜 중요하지는 않다. 셰일 혁명 덕에 미 산유량은 2008년 하루 500만배럴에서 올해 하루 930만배럴로 증가했고, 이 같은 공급 붐은 유가 붕괴에도 아직 지속되고 있다. 경제제재가 풀린 이란의 석유공급 전망 역시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가 하락은 어느 정도는 제로섬 게임이다. 생산자가 손해를 보는 반면 소비자들이 이득을 얻는다.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유가하락은 세계 수요를 자극한다. 소비자들이 이 횡재 대부분을 써버리는 한편 생산자들은 저축을 줄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그러나 이 같은 행태의 차이가 평상시보다 덜 뚜렷하다. 한 원인은 신흥시장 에너지 수입국들이 1980년대에 비해 세계 경제에 더 큰 족적을 남기고 있고, 이들의 석유시장 접근방식이 훨씬 더 간섭적이라는 데 있다.

인도나 중국 같은 나라들은 정부 보조금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싼 가격으로 에너지를 공급해왔다. 이 같은 보조금은 유가가 최고점에 이르면서 상당한 규모가 됐지만 오랜 관행으로 인해 많은 나라들이 이를 철회하기 어렵게 됐다. 유가 하락은 신흥시장 각 정부가 보조금 재정적자를 줄이는 기회로 작동하고 있다.

다른 한편 많은 석유수출국들은 급격한 수입감소에 직면해 지출계획을 줄일 수밖에 없게 됐다. 심지어 막대한 석유와 재정 여유를 갖춘 사우디아라비아마저 급속한 인구, 군사비 지출 증가로 인해 빠듯한 상황이다.

잠잠한 유가하락 효과는 전혀 예상 밖의 것은 아니다. 각종 연구들은 이 같은 가능성을 일찍부터 예견해왔다. 석유는 이제 경기순환에서 이전에 믿었던 것보다 덜 독립적인 변수로 간주되고 있다. 성장 제약 역시 에너지 관련 투자 급감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석유생산, 시추 관련 투자는 수년간의 급증세를 거쳐 올해는 1500억달러 급감했다. 결국 가격에 영향을 주겠지만 속도는 느리고 점진적일 것이다. 선물시장에서는 2020년이 돼도 유가는 60달러로 오르는 데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의 희소식은 대부분 경제모델이 저유가의 성장효과가 2년 더 지속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흥시장 수입국들이 보조금을 줄이는 데 몰두한다 해도 저유가는 성장에 지속적인 도움이 된다.

그러나 산유국들에는 위험이 더 커진다. 붕괴에 직면한 국가는 베네수엘라를 포함해 2곳뿐이지만 상당수가 경기침체에 몰려 있다. 콜롬비아, 멕시코, 러시아 등 변동환율제 국가들은 심각한 재정압박을 겪고는 있지만 그럭저럭 버텨내고 있다. 반면 고정환율제 국가들은 더 극심한 도전에 맞닥뜨려 있다. 강고하기만 했던 사우디의 달러 페그제도 최근 상당한 압력을 받고 있다. 올해 유가는 연초 전망과 달리 세계 성장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또 탄탄한 외환보유액과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거시정책 덕에 대부분 주요 산유국들은 지금까지는 위기에 몰리지 않고 재정압박을 견뎌내고 있다. 그러나 내년은 다를 수 있다.
그리고 특히 산유국들에는 좋은 쪽이 아니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정리=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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