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세밑 불황에 허덕이는 조선 협력사들

"조선사 하청직원 모여사는 울산 동구 지역경제 마비될 판"
조선 빅3 兆단위 적자에 하청업체들 줄줄이 폐업
10년 넘은 숙련공들 짐싸.. 조선 기술력 저하 위기감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직원이 용접을 마친 부위를 그라인더로 매끄럽게 갈아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 울산=안태호 기자】 "하청에 돈이 없으니 하청직원들이 모여 사는 울산 동구 지역은 타격이 너무 크다." 울산 동구는 현대중공업 본사가 들어선 곳이다. 동구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이 현대중공업과 관련된 일을 한다. 현대중공업과 이 도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지난 29일 오전. 울산 동구에서 만난 하창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장은 아직 정규직 직원들의 임금이 떨어지거나 체불되지 않아 지역경제는 무리 없지 않으냐는 질문에 "정규직들은 대부분 동구가 아닌 시내에 나가 산다"며 "협력업체들이 임금을 제때 못 줘 직원들이 모여사는 동구 근처의 가게들은 문을 닫고 있다. 동구 지역 경제가 위태롭다"고 말했다.

■조선업계 적자 누적 '힘든 겨울'

조선업계는 어느 때보다 힘든 겨울을 보내고 있다. 올 한 해 누적적자만 해도 7조원에 달하며 4.4분기 전망 또한 밝지 않다. 중소 조선사는 물론이고 조선 대형 3사도 조 단위 적자에 인원 감축은 물론, 사옥과 내빈용 헬기 등 돈 되는 건 모두 내다팔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박 건조에 큰 축을 담당하고 있던 하청업체에도 불똥이 번지고 있다.

2000년부터 하청업체에서 용접을 시작한 하 지회장은 "2013년부터 하청업체 폐업이 눈에 띄게 늘었고 임금과 퇴직금을 못 받았다는 상담사례들이 더 늘어났다"며 "원청의 적자가 하청업체를 궁지로 내몰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대형 조선사들의 대규모 인원감축과 관련해서는 "정규직은 노조와 협상을 통해 희망퇴직 등 절차를 밟아서 구조조정을 진행하지만 하청업체는 저항을 할 수 없으니 손쉽게 잘라낼 수 있어서 상황이 다르다"고 반박했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현재 297개의 조선.해양사업부 사내하청업체가 운영되고 있으며 올해만 기성 삭감을 견디지 못해 폐업한 하청업체가 100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내하청 폐업으로 기술력 저하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하 지회장은 "사내협력사여도 학자금·격려금을 근속에 따라 지급받기도 했는데 지금은 이런 복리후생이 줄고 있다"며 "폐업한 협력업체에는 10년 넘게 일해온 숙련공들이 많다. 기술력 저하가 걱정된다"고 지적했다.

이동 중에 만난 택시 기사 김모씨(62)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23년간 현대중공업에서 일한 뒤 정년퇴직했다. 김씨는 "협력업체는 꼭 필요하다. 협력사 직원들은 공사기간을 맞추는 데 반드시 필요하고 실질적으로 궂은일을 다 한다"며 "서로 상생하는 길을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 대형 3사(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의 하청 기능직원들 수는 올해 9만4570명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9만7634명으로 정점을 찍었던 것에 비해 3064명이나 줄어들었다. 조선 대형 3사의 하청 기능직원 수가 줄어든 것은 2010년 이후 처음이다.

■하청사 사채로 연명

최근에는 직원 인건비 문제로 사내 협력사 대표 자살사건까지 발생해 지역사회가 뒤숭숭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얼마 전 사내 협력사 대표들이 대책위를 꾸리기도 했다. 대책위 사무실에서 만난 신문수 대표는 "1978년 조선업계에 들어와 2011년 3월부터 2015년 11월 말까지 4년8개월간 업체를 운영했다. 그런데 지금 10억원에 가까운 부채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2013년까지는 4대 보험을 포함한 1인당 인건비를 기준으로 돈을 받았는데 그 이후에는 인건비 대비 50%밖에 되지 않는 돈을 받아 힘들어졌다"며 "지금 대책위에 모인 대표들은 모자라는 인건비를 대기 위해 제2금융권에 손을 대거나 집을 담보로 잡히고 사채를 빌린 사람들이 상당수"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원청업체 관계자는 "도급계약은 인건비가 아닌 물량 단위로 맺어지고 있고 공사 마무리 시점에서 공사대금 전액을 지급하고 있다"며 "매월 지급되는 기성은 공정률에 따라서 정상적으로 지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지역경제는 거의 초토화됐다. 예전에는 저녁시간이면 북적이던 음식점이나 가게에 손님이 끊겨 문을 닫는 곳도 크게 늘었다.

2013년 말부터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에 신고된 조선업계 임금체불 관련 사건은 크게 늘었다. 2014년 12월부터 올 10월까지 울산지청에 접수된 이 지역 조선소 폐업 하청업체 수와 체불임금액은 26개사, 161억원에 달한다. 이는 울산지청의 올해 체불액 302억원의 53.3%다.

협력사 관계자는 "조선업계 협력사들이 처한 상황은 정부가 나서야 할 정도로 긴박하고 절실하다"며 "협력사 대상 장기저리 대출이나 긴급자금 대출 등의 실질적인 금융지원책이 시급하다"고 호소했다.


울산지청은 원청의 협력업체 관리책임자 및 협력사 대표들과 함께 정기적인 협의체를 가동키로 합의했다. 첫 협의회는 내년 1월 7일로 잡혀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SK하이닉스처럼 원청 근로자들이 임금을 절감해서 협력업체를 지원해주는 모습이 좋았는데, 이번 조선업체들 임단협에선 그렇지 못해 아쉬웠다"며 협의회를 통해 원청과 협력사의 간극을 줄여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co@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