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NICE 코리아 (4)기업가정신] 20~40대 젊은 CEO들이 말하는 기업가 정신

박소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2.31 20:07

수정 2016.01.03 15:13

'믿을 건 젊음' 20대 CEO SNS에너지 김찬호 대표 "일단 부딪쳐봐라"
기술로 승부하는 30대 디자이너 로이크 정종윤 대표 "잘하는 일을 하라"
40대의 도전 투비콘 노정한, 담원 박상민 대표 "인맥이 힘이다"
청년실업 10만명 시대, 도전정신은 사라지고 1만원도 안되는 최저임금에 열정페이까지 청년들이 위축되고 있다. 이들은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고 부른다. 중장년층은 아예 위기를 얘기한다. '위기의 중년층'은 이제 관용어가 됐다. 모두가 어렵다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에 기업가정신은 시대적 사명이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말한 "이봐, 해봤어?" 한마디는 지금까지 명언으로 회자된다.
도전정신의 실종 시대라는 지금, 기업가 정신은 있는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 규모가 크진 않지만 자신만의 전문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20대, 30대, 40대 최고경영자(CEO)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SNS에너지 김찬호 대표(왼쪽), 로이크 정종윤 대표(오른쪽)
SNS에너지 김찬호 대표(왼쪽), 로이크 정종윤 대표(오른쪽)


통계청이 최근 펴낸 '2015 사회동향'에 따르면 삶에 대한 만족도가 가장 높은 나이는 바로 청년층(20~35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헬조선'을 부르짖는 청년층이지만 내면에는 여전히 희망과 도전 의식을 품고 살고 있다는 방증이다.

■'믿을 건 젊음' 20대 CEO SNS에너지 김찬호 대표 "일단 부딪쳐봐라"

폐열회수처리기업 SNS에너지의 김찬호 대표(29·사진)는 도전 정신이 뭔지 보여주는 20대 최고경영자(CEO)다. 23세 젊은 나이에 사업을 시작한 김 대표는 본인을 세일즈해 지금의 사업을 일궜다. 직접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에 공장들을 찾아가 배우며 폐열회수 기계를 직접 만든 것은 물론, 회계·투자 등 기업 경영까지 스스로를 담보로 투자받아 익혔다. 광운대 전자물리학과 재학 중이던 김 대표는 기업에 입사하는 동기들을 보며 미래에 대한 고민에 휩싸이게 된다. 자신이 갈 길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어떤 분야든 가장 잘하는 사람에게 직접 물어봐야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게 철칙이었어요. 전자, 물리 분야 우수생들이 모인다는 카이스트, 서울대 앞에서 기다리다가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무작정 물어봤죠. 왜 이 전공과목을 배우는지, 취직은 어떻게 할 건지, 최종 목적이 뭔지 등등이요. 미래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계기가 됐죠."

김 대표가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종합해 내린 결정은 미국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 진학이었다. 사정이 여의치 않았지만 미국에 가야 길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일단 결심이 서니 실행은 빨랐다. 당시 태권도 4단으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었던 김 대표는 관장 소개로 MIT 인근 한 태권도장에서 지내며 파트타임 강사로 일하게 된다. 미국에서도 김 대표 특유의 무대포식 정보 수집은 계속됐다. 캠퍼스 앞 의자에 하루종일 머물며 지나가는 한국인들에게 도움과 조언을 구했다. "가 본 사람이 방법을 제일 잘 알잖아요. MIT가 가고 싶어 왔으니 어떻게 해야 들어갈 수 있는지 직접 만나 물어봤죠." 김 대표는 교수들에게도 무작정 찾아가 조언을 구하고 읍소했다.

그러다 보니 정식으로 학교를 다닌건 아니지만 지인들이 많이 생겼다. 주로 에너지, 물리 계통을 공부하는 사람들이었다. 6개월 남짓 미국에 머물었던 김 대표는 MIT 학생들을 대상으로도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사고방식이 깜짝 놀랄만큼 달랐어요. 지금 제일 잘 할 수 있는 걸 찾아서 하라는 거였죠. 여기서 배울 건 다 배웠다고 생각하고 귀국했어요."

김 대표는 그 순간부터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치열한 고민에 들어간다. 주 관심 분야인 에너지 사업을 구상했다. 그 중에서도 '열에너지'에 착안했다. 오랜 고민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에너지 재활용'이었다. 김 대표는 귀국 후 바로 현장으로 나갔다. 염색 공장이 모여있는 안산을 목적지로 택했다. "보통 물을 데우는데 열 에너지가 가장 크게 소모돼요. 공장 중에서도 염색 공장이 가장 에너지를 많이 쓴다는 얘기를 듣고 바로 뛰어간거죠. 현장에서 보니 열에너지가 다 버려지고 있었어요. 데운 물이 폐수로 버려질 때 열에너지도같이 빠져나가는 거예요. 이걸 재활용해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들었죠. 그래서 폐열 회수기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김 대표는 특유의 집념으로 갖고 있던 이론적 지식을 총동원하고 공장 사람들의 도움까지 얻어 기계를 완성했다. 하지만 바로 시련에 부딪혔다. '에너지 재활용'이라는 생소한 개념을 국내 공장들이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여기서 김 대표 특유의 도전 정신이 또 한 번 발휘된다. "어차피 망할거면 해외로 돌려보자는 생각이었어요. 겨우 겨우 일본 염색공장을 소개받아 드디어 처음 판매를 했어요. 다행히 좋은 평가를 받았죠. 기존 폐수 처리에 연간 30억원을 썼는데 10억원 어치는 재활용 할 수 있게 됐다고요."

제품에 만족한 일본 기업이 대만 염색공장을 연결해줬고, 대만 공장은 중국 공장을 소개시켜 줬다. 그러고나니 비로소 구매를 원하는 한국 공장도 생겼다. 기계를 첫 판매한 2012년 매출액 2억원을 시작으로 2013년 8억원, 2014년 18억원으로 매출 규모는 점점 늘었다.

그러다 돌연 난관에 봉착했다. 물건이 팔리고 회사는 커 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돈이 안 남는 상황이 된 것이다. 김 대표가 회계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 계기다. "회계 공부를 독학으로 시작했다가 안되겠어서 주위에 마구잡이로 수소문했어요. 그러다 한 회계 컨설팅 업체에 연이 닿았는데 제가 돈을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결국 저를 팔았죠. 나를 믿고 회계 투자 해달라, 내가 성공하면 갖다 주겠다고요." 김 대표는 그렇게 '공짜로' 판관비, 임금, 마진, 세금 등 기업 경영에 필수적인 회계 이론과 실무를 1년 간 배웠다.

김 대표가 현재 몰두하고 있는 건 '조직화'다. "단순히 돈을 버는 것과 회사를 기업으로 키워내는 건 정말 또 다른 문제더라구요. 회사를 다닌 적이 없다보니 조직 생활도 잘 모르고요. 사업을 기업으로 키워내기 위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기술로 승부하는 30대 디자이너 로이크 정종윤 대표 "잘하는 일을 하라"

20대 대표들이 '맨땅에 헤딩'식의 열정을 갖췄다면 30대 청년 기업가들은 도전 정신에 더해 자기 능력을 살려 전문성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 지난해 30대가 창업한 기업은 19만4000개로 전체 신생기업의 23.1%를 차지한다. 액세서리와 신발·의류 등 패션 부문 등을 중심으로 자기만의 브랜드를 론칭한 디자이너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서티마켓' '애드리브플리마켓' 등 프로젝트형 벼룩시장 문화를 확산시키며 생산은 물론 유통도 직접 맡고 있다.

구두 디자이너 정종윤 대표(32·사진)는 1년 전 자체 구두 브랜드 로이크를 론칭했다. 캐주얼과 정장에 모두 어울리는 편한 신발이라는 입소문을 타면서 창업 1년 만에 월 4000만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로이크에서만 7~8개 제품을 구매한 '충성 고객'도 많다.

하지만 처음부터 회사를 차릴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다. 대학 졸업 후 구두 회사에 입사, 디자이너로서의 삶에 불만이 없었기 때문이다. "구두 디자인이라는 업무 자체가 너무 재밌었기 때문에 내 사업을 한다는 것에 대한 욕심은 전혀 없었어요. 사업가 마인드도 없었고 자신감이 컸던 것도 아니고요. 무엇보다 그냥 디자이너로 남고 싶었죠."

기회는 뜻하지 않게 왔다. 큰마음 먹고 이직해 6개월 정도 준비한 신규 구두브랜드 론칭이 결국 무산되면서다. 정 대표에겐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이 정도 준비를 해봤고, 몇 년간 회사에서 늘 해왔던 업무인데 혼자서 못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엇보다 국내 수제화 업계 문화가 오더메이드(결제 후 제작)로 바뀌어가면서 사업 자금도 크게 필요 없을 것 같았어요."

정 대표의 예상은 적중했다. 결제를 하고 열흘 이상 기다리는 수고는 한땀한땀 정성들여 만든 디자인 앞에서 장애가 되지 않았다. 정 대표는 더욱 더 착화감에 공을 들였다. "신규 디자인이 나오면 무조건 맨발로 신고 오래 걸어봐요. 발이 편한 게 가장 중요하니까요. 재구매율이 높은 이유 중 하나인 것 같아요. 디자인 콘셉트를 정장과 캐주얼에 모두 어울리는 신발로 잡은 것도 많은 호응을 얻었습니다."

그의 젊은 감각은 마케팅에서도 통했다. 정 대표는 제품 홍보에 있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도움이 컸다고 말한다. "예전처럼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으로 제품을 제시하는 시대는 지났잖아요. 소비자와 피드백을 주고받기도 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살필 수 있는 SNS는 최고의 마케팅수단입니다."

■40대의 도전 투비콘 노정한, 담원 박상민 대표 "인맥이 힘이다"

20~30대 젊은 창업가들이 열정과 패기로 시작했다면 40대들은 인맥을 무기로 회사를 열었다.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택한 건 공통점이다.

모바일 의료증명서 발급 업체 투비콘을 차린 노정한 대표(47)는 아내와 초등학생 자녀를 둔 가장이다. 대형 병원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다 지난해 창업을 결정했다.

평생 직장으로 생각한 건 아니지만 노 대표에게 위기는 한순간에 왔다. 직장 생활 중 한 번씩은 있을 만한 상사와의 갈등이 문제였다. "제가 보기에는 손해가 뻔한 사업을 새로 부임한 상사가 정치적인 이유로 밀어붙이면서 갈등이 시작됐죠. 한 번 부딪히니까 그다음에는 사사건건 부딪히더라고요. 갑자기 회사에서 나왔는데 받아줄 곳은 마땅치 않고…. 이참에 새로 회사를 차리기로 했습니다."

노 대표는 병원에서 했던 일을 기반으로 회사를 차리기로 했다. 주로 정보기술(IT)을 의료에 접목시키는 것이다. 태블릿PC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간호전자차트를 개발하고, 환자 기록을 전산화하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투비콘을 차리고 전공을 살려 인터넷, 모바일에서 의료증명서를 파일 형태로 발급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보험료 청구 등에 필요한 증명서를 인터넷과 모바일로 쉽게 받아 볼 수 있다.

오랜 기간 함께 일했던 팀이 함께 퇴직해 사람을 구하는 스트레스도 크지 않았다. "모든 분야가 그렇겠지만 의료.보험은 깊게 알수록 사업으로 구상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몸담았던 곳에서 쌓은 인맥이 큰 자산이 됩니다."

빅데이터 및 3차원 기반 소프트웨어 기업 담원을 만든 박상민 대표(43)도 아내와 두 아이를 둔 가장이다. 벤처기업협회의 인큐베이터 과정을 거쳐 3개월 전 창업했다.


박 대표는 엔지니어링 업체 세 곳에서 20년 가까이 직장 생활을 했다. 사업 준비를 위해 1년 반 정도 준비기간을 거쳤다는 박 대표도 인맥 관리를 강조했다.
"20대가 인생 담보 리스크라면 40대는 가족 담보 리스크죠. 위험도는 비슷해요. 20년 정도 계속 엔지니어링 일을 하다 보니 영국, 동남아, 중국에 믿고 거래할 만한 곳이 있었어요. 창업 후 소프트웨어 개발 의뢰가 가장 먼저 들어온 곳도 이곳들입니다."

psy@fnnews.com 박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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