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서울시향 사태를 돌아보다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1.07 17:09

수정 2016.01.07 17:29

[데스크 칼럼] 서울시향 사태를 돌아보다

서울시향 사태를 다시 거론하는 건 곤혹스러운 일입니다. 이 사건에 대한 진실은 어디서도 제대로 밝혀진 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태를 복기하는 건 하나의 사건에 대한 해석과 가치판단이 참으로 다양하다는 걸 이번에도 뼈저리게 느껴서입니다.

지난달 28일 이제 막 신문사에 입사한 수습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문화 기사, 이렇게 써야 한다'를 주제로 강의해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만, 사실 무엇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무슨 얘기를 할까 고민하던 차에 당일 문화계 최대 이슈였던 서울시향 사태에 관해 토론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일치 신문을 뒤져봤습니다. 이날은 서울시향 정명훈 예술감독의 재계약을 논하기 위한 이사회가 열리는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정 감독의 부인이 (박현정 서울시향 전 대표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입건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바로 다음날이기도 했습니다.

인터넷 언론부터 종이신문까지 거의 모든 매체가 이 사실을 앞다퉈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당일 보도를 찬찬히 살펴보면 동일한 사건을 바라보는 각 매체의 태도와 입장엔 미묘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우선 A매체는 1면 우측 상단에 기사를 배치하면서 '정명훈 감독 재추대, 시향 졸속 이사회 논란'이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29면에 게재된 해설기사도 "박 전 대표 음해에 개입한 의혹이 있는 정 감독 부인에 대한 수사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무리하게 재계약을 추진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며 서울시향 이사회와 정 감독 측을 은근히 압박했습니다.

이에 비하면 B매체는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합니다. 이날 문화면에 실린 기사의 제목은 '정명훈 재계약 시점에 불리한 수사 발표?'였는데, 정 감독 부인 입건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이유를 거론하며 "30~40살이나 먹은 직원들이 정 감독 부인의 지시를 일방적으로 따른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서울시향 직원의 말을 전합니다. 이어서 "박 전 대표의 언어폭력에 의한 인권침해는 왜 모르는 척 넘어가는지 모르겠다. 정 감독 재계약 여부를 결정하는 이사회를 앞두고 이번 사안이 갑자기 나온 것도 이상하다"는 서울시 인권보호관의 전언도 덧붙입니다.

후배 기자들의 의견도 다양했습니다. 진실이 무엇이든지 간에 지금까지의 논란만으로도 정 감독이 더 이상 서울시향에 남아 있을 이유는 없다는 주장부터, 아직 밝혀지지도 않은 사실을 들이대며 정 감독을 궁지로 몰아넣는 건 좀 곤란하다는 의견까지 저마다 다른 생각을 제시했습니다. 사건 당사자들뿐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제3자들도 자신의 입장과 가치관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하는 걸 보면서, 아마도 그 '다름'이 '불화'를 만들어내는 불씨 역할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지금까지 밝혀진 명백한 사실은 두 가지뿐입니다. 첫 번째는 서울시향 직원과 박 전 대표 측이 여전히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정 감독이 어쨌든 서울시향을 떠났다는 사실입니다.
젊은 소설가 홍형진이 최근 한겨레신문에 투고한 글을 통해 "정명훈과 헤어지더라도 이런 식은 곤란하다"며 "이럴 때는 판단 시점을 뒤로 미뤄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칼럼의 마지막 문장을 써놓고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습니다.
누군가는 또 '당신의 생각이 틀렸다'거나, 적어도 '당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말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진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요?

jsm64@fnnews.com 정순민 문화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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