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현장클릭] 문재인과 이기택의 닮은꼴?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1.12 17:44

수정 2016.01.12 22:14

[현장클릭] 문재인과 이기택의 닮은꼴?

지난 1996년 4월 15대 국회의원선거에서 통합민주당을 이끌던 이기택 총재는 고개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당시 통합민주당은 15개 의석을 확보하는 데 그치면서 의석수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에서 절반이 줄었다.

특히 호남에서 한 석도 건지지 못 했다. '민주'라는 이름을 가지고도 야당의 적자임을 자부할 수 없게 됐던 것이다. 부산지역 의원 출신인 이 총재가 지역구도 타파를 외쳤던 탓에 영남에서 3명의 의원을 배출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이때 당시 이 총재와 함께한 야권 인사 가운데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있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원혜영, 유인태 등과 함께 국민회의에 합류하며 등을 돌렸던 세력과 다시 손을 잡았다.

현역의원이 대폭 줄면서 영향력을 상실한 통합민주당은 '꼬마민주당'이라고 불리며 자존심을 구기게 됐다. 후에 통합민주당은 당이 해체되는 수순을 밟았고, 이기택 총재는 이회창 총재의 신한국당과 연합하면서 사실상 정계에서 이름을 감추게 됐다.

7선을 지낸 이기택 총재와 통합민주당이 존재감을 상실하게 된 이유는 야권의 핵심 지지층인 호남의 민심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역주의 타파를 앞세워 호남을 버리고 전국정당을 표방했지만 역으로 호남의 민심을 얻지 못하면서 전국정당의 발판을 잃은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지역주의는 격파해야할 한국 정치의 적폐지만 버릴 수도 없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최근 정치권에선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가 옛 꼬마민주당 이기택 총재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지적이 부쩍 늘었다. 결국 야권에서의 생존 여부는 호남 민심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야권의 대표주자가 되기 위해선 호남의 지지를 얻어야 하지만 문 대표의 얼굴로는 호남에선 더 이상 표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호남에선 문 대표를 비롯한 친노(친노무현) 세력에 대한 반감이 강하다.

노 전 대통령을 "몰표로 당선시켜줬지만 호남엔 베푼 것이 없다"라고 내뱉는 푸념엔 노골적이지만 솔직한 감정이 담겼다. 열린우리당 시절 DJ(김대중) 대북송금 특검을 친노가 주도했다는 뿌리 깊은 반감도 있다. 친노를 야권 세력이지만 오히려 영남세력으로 보는 시각이 더 많은 것이다.

이에 향후 호남 민심을 잡을 '대체재'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핵분열을 하는 야권에 '구원투수론'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 야권 재편을 위한 신당들 모두 호남 민심을 잡기 위해 혈안이 돼있다. 천정배, 박주선 의원은 물론이거니와 가칭 국민의당의 안철수 의원도 말할 것이 없다.

그런데 한 가지 집히는 대목이 있다. 안 의원도 부산, 영남 출신이다. 야권의 유력 대권후보인 박원순 서울시장도 고향은 경남 창녕이다. 호남의 정치적 소외감은 여전할 수 있다. 호남을 시작으로 이른바 안풍(安風)을 일으키고 있는 안 의원은 신당 창당 과정에선 전면에 나서지 않고, 대권도전에 대해 일단 선을 그으면서 '킹메이커' 역할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지난 1997년 15대 대통령선거에선 정계은퇴를 선언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다시 등판해 정권을 잡았다. 구원투수를 불펜에서만 고를 게 아니라 야구장 밖에서도 데려와야 할 때일지 모른다.
선택은 결국 호남민심에 달렸다.

조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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