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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구의 소비자경제] 무상보육과 소비자 권리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1.14 17:12

수정 2016.01.14 17:12

[이성구의 소비자경제] 무상보육과 소비자 권리

요즘 누리과정(만 3~5세 어린이가 모두 유치원·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하는 교육과정) 예산부담 문제가 논란을 넘어 실제로 많은 어린이집·유치원 운영자나 학부모들에게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누리과정 예산부담 논쟁은 어제오늘 시작된 것이 아니다. 이미 2014년부터 정부는 누리과정 소요예산은 관련 법령에 따라 교육청 예산에서 부담할 사항이라며 정부예산에서 제외했고, 교육청들은 2015년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거부한 데 대해 정부와 여당은 법적 근거가 없는 무상급식에 대한 시.도교육청의 지원을 중단하라고 압박하면서 정부와 시.도교육청 간의 갈등이 심해진 것이다.

지난해 끝난 시·도의회 교육청 예산 심의 편성 과정에서 8개 시·도가 어린이집 예산을 한 푼도 편성하지 않았는가 하면 4개 시·도는 형평성을 근거로 유치원 예산까지 전액 삭감했다. 당장 올 1월부터 어린이집이나 사립유치원 원아 1인당 29만원, 공립유치원 원아 1인당 11만원을 학부모들이 부담할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에 교육부는 전국 시.도교육청에 누리과정 관련 추경예산 편성계획을 1월 12일까지 제출할 것을 요청했고, 올해 지방자치단체가 각 교육청에 교부하는 전입금 규모가 교육청들이 세운 2016년 예산과 비교해 약 1조6000억원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지만 교육청들이 이에 쉽게 응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무상급식 확대를 반대하던 논리와의 일관성이나 연결점을 찾기는 쉽지 않지만 무상보육 확대는 새누리당과 박근혜정부 대선 공약사항이었다. 지난번 무상급식 논쟁은 누구에게 무상급식을 할 것이냐는 지원대상에 관한 것이었다면 이번 누리과정 예산을 둘러싼 갈등은 지원대상은 정해진 상태에서 '보육예산을 누가 부담할 것이냐'의 문제로 성격이 조금 다르다. 하지만 두 경우 모두 정치적 포장에 불구하고 누구의 돈으로 생색을 낼 것이냐는 논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당시 무상급식은 포퓰리즘이 논란거리였지만 자기 부담으로는 소비하지 않았을 것을 공짜라고 소비하는 일을 포퓰리즘이라고 한다면 단체급식으로 함께 먹는 마당에 무상급식 확대를 포퓰리즘으로 비난한 것은 무리였다. 아마 야당(서울시 의회)의 무상급식이란 정책상품을 시 예산으로 부담할 수 없다거나 그럴 예산이 있다면 오(세훈) 시장표 정책에 사용하고 싶은 것이 속내였을지 모른다. 다행히(?) 무상급식 문제는 오 전 시장의 결단으로 소비자가 참여해 주민투표로 결정됐다.


이번 누리과정 예산의 경우 법령상 부담 주체나 가용재원 문제로 다투고 있지만 속내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진보 교육감들이 다수 당선되면서 정부.여당으로서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투입되는 교육청 예산으로 진보 교육감들의 정책보다 대선 공약인 영유아보육 확대를 시행하고 싶은 것이고, 교육청 측으로서는 자신들 예산으로 박근혜표 보육정책을 대행하기 싫은 것일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갈등의 피해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가는 것인데, 정작 소비자는 권리를 행사하거나 의견을 반영할 방법도 없다.
이제 복지도 단순한 시혜가 아니라 권리로 인식할 필요가 있고, 소비자의 합리적인 목소리가 절실하다.

yisg@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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