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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협상의 기술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1.19 16:50

수정 2016.01.19 16:50

[여의나루] 협상의 기술

우리는 흔히 협상이라고 하면 가능한 한 상대방의 양보를 이끌어내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단기적인 성과를 위해서 치열하게 자신의 이익만을 도모하다 보면 상대방과의 신뢰에 흠이 가고 협력을 구하지 못하게 돼 장기적인 관점에서 오히려 손해가 될 수도 있다. 협상은 나 혼자의 이익만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이익도 고려해 상호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협상은 쌍방 간의 이익이 서로 상충되기 때문에 각자의 우선순위에 따라 취사선택이 불가피해 장기적으로 이익이 된다면 지금 당장의 다소간 손해는 감수하기도 해야 한다. 또한 나와 협상 당사자 간만의 관계를 넘어 큰 줄기의 맥락을 살피는 혜안도 필요한 것이고, 심지어는 협상 당사자가 아니지만 나와 관계가 있는 제삼자의 이익도 증진하게 하는 것이 최고의 협상이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상생, 윈윈하는 협상이라 할 것이다.


필자가 비즈니스에서나 유용할 협상의 기술이란 주제를 난데없이 꺼낸 것은 요즘 국회 입법 과정에서 보여지는 한심스러운 결과들 때문이다. 수많은 제·개정 법안이 여야 간 협의과정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몇 달째 잠자고 있다고 한다. 그중에는 한시가 급한 법안도, 경제·사회 활동에 불가결한 법안도 있을 것이다. 더욱이 일몰법이라 하여 지난해 말로 시행이 완료되는 일부 법안의 경우 개정 입법이 무산됨에 따라 현재 사실상 법률이 없어진 그야말로 무법상태가 돼버린 일도 있다. 경제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법률이기 때문에 관련부처에서도 두 번 세 번 절박성을 설명, 호소를 했을진대 헌신짝 버리듯 결국 초유의 무법사태를 만들어버렸다. 한심하다 못해 화가 치밀어 오른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무슨 일로 그리 바빠 본연의 일을 내팽개치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소위 쟁점법안의 처리가 교착상태에 빠졌는데도 한쪽은 집안싸움 때문에 법안 처리에 소홀하다고, 또 다른 한쪽은 재벌 입장만 대변하고 경제적 약자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법안이라 처리할 수 없다고 서로 비난만 하고 있다.

국정 감사 때 여야 의원을 막론하고 피감기관을 매섭게 다그치는 그런 열정(?)은 어디에 있으며 늘 입에 달고 있는 민생을 위한 입법활동에 국민은 어디에 있는가. 윈윈, 상생하는 최고의 협상은 아니라 하더라도 최소한의 협상다운 협상은 있었는지, 하고는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연말연초 모임에서 공직자 후배들로부터 넋두리처럼 한결같이 들려오는 말이 제일 힘든 일이 이젠 입법이라고 한다. 몇 달에 걸쳐 법안작업을 해서 수도 없이 의원실을 쫓아다녀도 정작 입법상황은 예측하기 힘들다고 한다. 오죽하면 언론에서 법률거래소라고 비아냥거릴까 싶다. 정성을 들인 법안은 그 내용보다는 여야 간 주고받기 딜로 결정되기 일쑤이고, 첨예하게 대립되는 법안이나 정치적 상황에 여타 입법이 올스톱돼버리는 상황이 그렇다고 한다. 뭐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

이제 몇 달 후면 총선이다. 그러다 보니 의원들의 관심은 온통 선거에만 쏠려 있다. 어떻게 하면 다시 한 번 금배지를 달 수 있을까 노심초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게다. 하지만 정작 그들의 본연의 의무는 국민의 이익과 국가 발전을 위한 좋은 법률을 만드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이라도 산적한 입법의무를 다하고, 그리고 국민 앞에 나서주길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인해 여야 간 협상이 해법이라면 밤샘협상을 통해서라도 해결해주어야 한다. 마땅치는 않지만 여야 간 딜을 해서라도 민생 해결을 내팽개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그리고 진정성 있는 협상의 기술을 발휘해주길 바란다. 쌍방의 협력적인 선택이 둘 모두에게 최선의 선택이고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면 둘 다 최악의 결과를 얻는다는 '죄수의 딜레마'를 기억하기 바란다.
역사 앞에 죄인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고, 그리고 딜레마도 슬기롭게 해쳐나가길 기대해 본다.

정의동 전 예탁결제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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