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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석학에 듣는다] 중국의 경제모델 수출하기

송경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1.22 17:14

수정 2016.01.22 18:02

[세계 석학에 듣는다] 중국의 경제모델 수출하기

2016년 시작과 함께 한편에는 중국, 또 다른 한편에는 미국과 기타 서방국들이 자리한 역사적인 개발모델-즉 경제성장 증진을 위한 전략모델- 경주가 시작됐다. 비록 이 경주가 대중적으로는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그 결과는 앞으로 수십년간 상당수 유라시아 국가들의 운명을 결정짓게 될 것이다.

잘 알다시피 중국의 성장률은 크게 둔화됐다. 최근 수십년간 연 10%를 넘던 성장률이 지금은 7% 밑으로 떨어졌다(아마도 더 낮을 수도 있다). 중국 지도부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수출 주도, 환경 손상 성장모델에서 내수·서비스 모델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대대적인 대외전략도 병행하고 있다.
2013년 시진핑 국가주석은 유라시아 경제의 핵을 뒤바꿀 '일대일로'라는 거대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일대'는 중국 서부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여기서부터 유럽과 중동, 남아시아를 철도로 연결하는 방안이다. 괴상한 작명인 '일로'는 항만과 시설들로 구성된다. 동아시아 국가들을 일대에 연결해 이 지역의 수송을 지금 같은 해상이 아닌 대륙을 통하도록 하는 것이다.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은 부분적으로 일대일로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고안됐다. 그러나 일대일로 투자 규모는 AIIB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 보인다.

사실 일대일로는 중국 정책의 일대 전환을 나타낸다. 사상 처음으로 중국이 자체 개발모델을 다른 나라로 수출하려 하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 기업들은 지난 10년간 중남미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을 섭렵하며 대규모 상품, 채굴 산업과 또 이렇게 생산된 자원을 중국으로 퍼나르기 위한 인프라에 투자하는 등 이 지역 산업활동에 깊숙이 개입해왔다. 그러나 일대일로는 다르다. 그 목적은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산업설비와 소비수요를 확대하는 데 있다. 중국은 저개발국의 천연자원을 뽑아내는 대신 이들에 자국의 중공업을 이동시키고, 이들을 부유하게 만들어 중국 제품 수요를 끌어올리려 하고 있다.

중국의 개발모델은 현재 서구에서 유행하는 것과 달리 산업발전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정부 주도의 대규모 인프라 투자-도로·항만·전력·철도·공항-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미국 경제학자들은 이 같은 '길을 닦으면 지나간다(build it-and-they-will-come)' 식의 모델을 반대한다. 국가가 대규모로 개입되면 부패와 공금유용이 횡행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서구의 목표는 훌륭하기는 하지만 그것만 있다면 어떤 나라도 부유해질 수 없다. 공공의료는 지속적인 성장에 중요한 배경이다. 그러나 병원에 전기와 상수도가 공급되지 않거나 병원에 갈 수 있는 훌륭한 도로가 없다면 효과는 반감된다. 중국의 인프라 기반 전략은 중국 내에서 놀라운 성과를 나타냈고, 일본부터 한국, 싱가포르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 국가들도 추구했던 중요한 전략이다.

미래 세계 정치지형에 관한 최대 질문은 명료하다. 누구의 모델이 우세할 것인가. 일대일로가 중국 입안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면 인도네시아부터 폴란드에 이르기까지 유라시아 전체가 다음 세대에 일대 전환을 맞게 될 것이다. 중앙아시아는 세계 경제의 변방에서 핵심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중국의 독재정부가 크게 신임받으면서 전 세계 민주주의에 막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됨을 뜻한다.

그러나 다른 중요한 이유들로 인해 일대일로가 성공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인프라 주도 성장은 지금까지 중국에서는 잘 작동했다. 중국 정부가 정치 환경을 통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안정과 갈등, 부패로 얼룩진 외국에서는 중국의 계획이 방해받을 것이다. 사실 중국은 이미 에콰도로, 베네수엘라처럼 대규모 투자가 이뤄진 곳에서 이해를 다투는 이들, 국수주의적 의원들, 변덕스러운 이들로부터 거센 반발에 직면해 있다.

그렇다고 미국이나 다른 서방 국가들이 중국의 실패를 앉아서 기다려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대규모 인프라 개발 전략은 중국 내부에서 한계에 직면했을지 모른다. 또 해외에서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여전히 글로벌 성장에 필수불가결하다.

미국은 유행이 지날 때까지 1950년대와 1960년대 대형 댐과 도로망을 건설하곤 했다. 오늘날 이런 면에서 미국은 개도국에 거의 제공하는 게 없다.
미국은 AIIB 창설멤버가 됐어야만 한다. 지금이라도 참여해 중국이 국제 환경, 안전, 노동기준에 더 많이 기울도록 움직여야 한다.
동시에 미국과 서방은 왜 인프라 건설이 개도국뿐만 아니라 자국 내에서도 그리 어려운지를 자문해야 한다.

정리=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프란시스 후쿠야마 미국 스탠퍼드대 민주주의·개발·법치연구소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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