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구순의 느린 걸음] 자율주행차 시대의 룰을 준비하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2.17 17:00

수정 2016.02.17 17:00

[이구순의 느린 걸음] 자율주행차 시대의 룰을 준비하라

운전 솜씨가 꽤 좋은 친구가 있다. 늦은 결혼으로 아이가 어린 친구는 다니는 직장을 그만둔 뒤 대리운전을 해서 아이를 마저 키우겠다고 말하곤 했다. 며칠 전 친구가 맥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대리운전 못하게 됐어. 곧 스스로 운전하는 자동차가 나온대."

이달 초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이 구글의 자율주행시스템을 운전자로 인정하기로 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한 친구의 반응이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의 결정은 거대한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일종의 '선언'이다.

현재 도로교통에 관한 모든 국제협약은 자동차가 운행하기 위해서는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 반드시 차 안에 타고 있어야 한다고 전제한다.
그런데 미국이 운전할 수 있는 '시스템'이 타고 있는 차도 도로를 달릴 수 있다고 입장을 바꾼 것이다. '무인 자율주행차'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진짜 정신차리고 깊이 들여다봐야 할 변화의 시작은 지금부터다. 룰 세팅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달릴 수 없는 이유는 기술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운전자가 책임져야 하는 도로 위의 모든 상황을 자율주행차 시스템이 책임져도 좋다는 룰이 없기 때문이다.

도로교통안전국의 결정은 자동차보험, 도로교통 시스템, 자동차 생산 등 자동차와 관련된 여러 산업의 구조를 바꿔놓을 룰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라는 신호인 셈이다. 당장 자동차보험산업은 무인자율주행차가 교통사고를 냈을 때 시스템 설계회사가 사고의 책임을 질 것인지, 자동차 소유주가 책임을 질 것인지 논쟁을 시작할 것이다. 시스템 업체와 보험사는 거대한 이익을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일 것이다.

우리 정부와 업체들도 룰 세팅에 참여하기 위한 논리를 준비해야 한다.

보수적이기로 정평이 난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이 자율주행시스템을 운전자로 인정하겠다고 앞장서 결정한 이유는 자율주행차 산업의 룰을 미국과 미국 기업들이 주도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은 아닐까.

모든 게임의 룰은 먼저 논리를 준비하고 공세를 펴는 측에 유리한 쪽으로 세팅되는 게 관례다. 준비 없이 세상의 변화를 구경만 하다 뒤늦게 허둥지둥 논의에 뛰어들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늘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인터넷 세상에 적용되는 모든 질서가 사실 미국 중심으로, 특히 미국의 몇몇 기업에 유리한 방식으로 적용된다는 의심을 받는 게 현실 아닌가. 미국의 몇몇이 인터넷을 만들었고, 그 위에서 자기들이 사업하기 좋도록 룰을 세팅했으니 다른 나라 기업들은 늘 볼멘소리밖에 할 게 없다. 인생 이모작을 고민하던 친구는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의 결정이 자신의 인생에 미칠 영향을 간파했다.


그런데 나는 아직 국내 어떤 기업도, 우리 정부의 누구도 자율주행시스템 시대에 적용할 룰을 고민하고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인터넷 산업처럼 자율주행차 시대의 룰 세팅에서도 우리 기업과 우리 국민이 빠지면 안 되는데…. 자율주행시스템의 룰을 세팅하는 자리에 '코리아'가 당당하게 참여해 미래산업의 꽃이라는 자율주행차 시대에 우리 기업이, 우리 국민이 손해보는 일이 없어야 할 텐데….

cafe9@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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