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당신은 정보기관을 신뢰할 수 있습니까


"아이폰 잠금해제 소프트웨어는 암과 같다." "애플의 법원명령 거부는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다."

애플과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연일 설전을 벌이고 있다. FBI에 아이폰 잠금해제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라는 법원명령을 애플이 정면 거부했기 때문이다.

아이폰 잠금해제 논쟁의 핵심은 '백도어'다. '백도어'란 어떤 제품이나 시스템에서 정상적인 인증절차 또는 보안절차를 우회하는 수단을 뜻한다. '뒷문'이란 의미에서 알 수 있듯 백도어를 통해서는 사용자의 허가 없이 은밀히 제품 또는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다.

애플은 FBI에 아이폰 잠금해제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것은 '백도어'를 제공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하고 있다.

FBI는 지난해 1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버너디노에서 총기테러를 벌인 뒤 사살된 사예드 파룩이 사용하던 아이폰5c의 보안기능을 우회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애플 측에 요구해왔다. 아이폰은 암호를 다섯번 틀리면 다음 입력까지 1분을 기다리고 아홉번 틀린 뒤부터는 1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10번 넘게 암호입력이 틀리면 아이폰에 담긴 모든 자료가 자동삭제된다.

숫자로 암호 6자리를 설정한 경우 조합수는 568억개, 입력시간은 144년이 걸린다. FBI가 결국 암호해제에 손을 들고 애플 측에 잠금해제 소프트웨어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한 이유다. FBI는 모든 아이폰에 대해서가 아닌 '파룩의 아이폰'에 대해 수사하기 위한 잠금해제 소프트웨어를 요청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애플은 이 소프트웨어가 한 번 만들어지면 다른 기기에도 사용될 우려가 있다며 FBI의 요청과 법원명령을 단호히 거부하고 있다. 그동안 미국 정보당국 수사에 적극 협조해온 애플의 이 같은 반발에 정부는 적잖이 당황하고 있다.

애플은 2008년부터 70여 차례에 걸쳐 정보당국에 이용자 정보를 제공하거나 정보 접근을 위한 기술지원을 해왔다. 애플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도 '파룩의 아이폰'이 애플의 클라우드 서비스 아이클라우드와 동기화된 마지막 시점인 10월 19일까지의 자료를 정리해 FBI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FBI가 확보하지 못한 것은 그후부터 범행 시점인 12월 2일까지의 자료다.

애플은 '정보제공이나 정보접근을 위한 기술지원'과 '암호화 해제' 백도어 제공은 명백히 다른 문제라는 입장이다.

이번 사건으로 '국가안보냐 프라이버시 보호냐'란 오래된 논쟁이 다시 시작됐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논쟁은 '국가안보를 책임지는 기관에 대해 과연 신뢰할 수 있는가'라고 영국 가디언지는 지적한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범인의 아이폰을 풀기 위해 현재 존재하지 않는 백도어가 만들어지면 모든 아이폰의 보안이 풀릴 수 있다"며 "그 누구도 이번 한 번만 사용할 것이라고 보장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애플이 개발하는 잠금해제 프로그램이 파룩의 아이폰을 풀기 위해 사용될 것이라는 FBI와 미국 정부의 주장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미 정부는 지난 4개월간 샌버너디노 테러범뿐만 아니라 마약사범들로 추정되는 다른 13개 아이폰의 잠금해제까지 애플에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FBI가 이번 사건에 앞서 암호화 기술을 무력화시키는 '백도어'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온 것도 이번 잠금해제가 1회에 그치지 않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부추기고 있다.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은 지난해 1월 미 국회 법사위원회에 출석해 "이슬람국가(IS) 등의 테러범들이 암호화 기술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어 백도어든 프론트 도어든 보안장치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번 사건을 두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신뢰를 잃은 미국 정부에 보내는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 "의사여, 너부터 고쳐라."

가디언은 지난 2013년 미국 정보기관의 감시활동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을 인터뷰해 단독기사를 낸 언론매체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로스앤젤레스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