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다?

김관웅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2.28 17:00

수정 2016.02.28 22:35

[데스크 칼럼]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다?

"불과 한달 전 중도금대출 안내서에는 2%대라고 하더니 갑자기 대출금리를 1%포인트 이상 올리는 게 말이 됩니까."(다산신도시 아파트 계약자)

"순위내 청약경쟁률이 수십대 일을 넘고 분양권에 웃돈(프리미엄)까지 붙었는데 부도위험이 높아 중도금대출을 못해준다니요?"(분양 관계자)

"금융위원회가 중도금 집단대출 규제를 풀 의지가 없어요. 우리 힘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청와대가 나서지 않는 이상…(절대 못 풀걸요)."(금융권 관계자)

"정부가 집단대출 관련한 지침을 내린 적 없어요. 은행이 건전성 확보를 위해 하는 업무를 정부가 어떻게 관여할 수 있나요."(정부 당국자)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은행권이 올 들어 중도금 집단대출을 사실상 중단하면서 주택시장이 아우성이다. 지난해 말 신규 분양 아파트를 계약한 사람들이 졸지에 중도금 대출을 조달할 길이 막혔다. 은행들은 "나중에 대출금 회수가 어려울 수 있다"며 금리를 더 올려 내든지 아니면 제2금융권으로 가라고 한다. 치솟는 전셋값에 신규 아파트를 분양받아 내집 마련에 나섰던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날벼락을 맞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처럼 선의의 피해자가 속출하는데 정부도 은행도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고 한다. 이러는 사이 정부의 주택시장 활성화 정책만 믿고 신규 분양받은 사람들의 피해는 계속 커지고 있다.

실제 다산신도시에서 중견 건설사가 공급하는 아파트를 분양받은 한 수요자는 지난 1월 내내 가슴을 졸였다고 한다. 계약금 업무를 취급했던 은행에서 중도금 집단대출을 거부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입주민들은 제2금융권으로 내몰렸다.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으면 순식간에 금리가 2%포인트 안팎이나 오르기 때문이다. 결국 건설사가 해당 은행에 애걸복걸한 끝에 금리를 약간 더 올리는 수준에서 중도금대출 약정을 했다고 한다.

경기도가 광교신도시 못지않은 명품신도시로 키우고 있다는 다산신도시에서 일어난 일이다. 다산신도시는 지난해부터 신규 분양이 이어지며 순위내 청약에서 수십대 일의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다. 또 분양권에는 프리미엄이 수천만원이나 붙어 있다. 이렇듯 분양시장에서 블루칩으로 속하는 다산신도시조차 이 정도로 피해를 입고 있으니 다른 지역은 말할 것도 없다.

한국주택협회에 따르면 올 1월 기준으로 은행권으로부터 중도금 집단대출을 거부당한 가구가 전국에서 1만5400가구에 달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또 은행으로부터 금리인상을 강요받아 결국 금리를 올려준 가구가 4400가구, 제2금융권으로부터 금리인상 압력을 받은 가구도 1만4200가구에 달했다. 이 같은 피해사례를 다 합치면 3만3900가구, 5조2000억원에 이른다.

지금까지의 피해 사례도 안타깝지만 더 안쓰러운 것은 앞으로 이 같은 선의의 피해자가 더 많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은행은 "정부가 (건전성 감독 강화하라는)지침 비슷한 것을 내려서…"라고 말을 흐리고, 정부 당국자는 "은행 고유업무라 정부가 관여하지 못한다"며 애써 눈을 피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주택협회에는 신규 분양을 받았다는 수요자라며 "은행이 갑자기 중도금 집단대출을 안해준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디에 도움을 청해야 하나요"라는 내용의 전화가 계속 들어온다고 한다. 한국주택협회 관계자는 "시장에는 분명히 규제가 들어와 있는데 정부와 은행들은 규제가 없다고 하니 이게 더 미치겠다"고 하소연했다.


지금 주택시장에는 어느 누구도 던진 적이 없다는 '그림자 규제' 하나가 매섭게 요동치고 있다.

kwkim@fnnews.com 김관웅 건설부동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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