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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최희서, 윤동주의 詩를 사랑했던 ‘그 소녀’

입력 2016.03.07 15:39수정 2016.03.07 18:43


[fn★인터뷰] ‘동주’ 최희서, 윤동주의 詩를 사랑했던 ‘그 소녀’

윤동주의 시를 누구보다 사랑했던 소녀 쿠미, 그리고 윤동주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배우 최희서와 영화 ‘동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 ‘동주’(감독 이준익)는 이름도, 언어도, 꿈도 허락되지 않았던 어둠의 시대 속에서도 시인의 꿈을 품고 살다 간 윤동주(강하늘 분)와 열사 송몽규(박정민 분)의 청년 시절을 정직하게 담아낸 작품으로, 극중 최희서는 동주의 시를 사랑하게 된 일본 여학생 쿠미 역을 맡았다.

최희서에게 윤동주라는 시인은 어렸을 적부터 특별했던 존재였다. 처음으로 ‘시인’이라는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 인물이 윤동주였으며, 처음으로 산 시집 역시 윤동주의 시집이었다. 그는 윤동주의 모교인 연세대학교 출신으로 대학 시절에는 언제나 윤동주의 시비를 지나다녔다. 대학생 시절 대학에서 주최하는 ‘윤동주 문학상’에 시를 제출할 정도로 시를 좋아하는 문학소녀이기도 했다.

“보통 시인들이 저와 멀리 떨어진 분들처럼 느껴진다면, 윤동주 시인은 제 삶과 가까웠던 분이에요. 평소에도 시집을 들고 다닐 정도로 좋아하고 시 쓰기가 취미이기도 해요. 주로 노트에 연필로 적어 놓는데 컴퓨터로는 안 옮겼어요. 시인으로 등단하고 싶은게 아니라 취미니까 나중에 정리하고 싶을 때 정리할 예정이거든요. 사실 대학 시절 ‘윤동주 문학상’에 시 10편을 낸 적도 있는데 당선이 안됐어요.(웃음) 나름대로 쓴다고 생각해서 제출했는데 날고 기는 친구들이 많았던 거죠.”

이렇게 최희서가 영화 ‘동주’에 출연한 것은 윤동주와 송몽규가 마치 하나의 삶을 살았던 것처럼 운명이었던 것 같다. ‘동주’의 제작과 각본을 맡은 신연식 감독과의 만남 역시 운명적이었다.

"2년 전 연극을 많이 했어요. 지원을 못 받아서 연출하는 언니와 사비로 무대를 대관하고 포스터도 붙였죠. 계속 연기를 해야 하나 싶을 만큼 힘들었던 상황에서 준비한 연극은 잘 올리고 싶어서 지하철에서도 항상 대본을 봤어요. 우연히 신연식 감독님이 제 맞은 편에 앉으셨는데, 제가 미친 사람처럼 대본 연습을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감독님께서는 제가 같은 역에 내리면 명함을 줘야지 했는데 제가 같은 역에 내렸대요. 당시에 감독님이 ‘동주’를 생각하고 계셨고, 제가 일본어를 잘한다고 해서 캐스팅 됐어요.”

[fn★인터뷰] ‘동주’ 최희서, 윤동주의 詩를 사랑했던 ‘그 소녀’

극중 쿠미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신은 일본의 대학 수업 시간에 동주가 한국어로 시를 쓰는 장면이다. 동주의 뒤에 앉은 쿠미는 동주의 모습을 순수하고 호기심어린 눈으로 쳐다본다. 그리고 그는 동주가 쓴 시의 내용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도 모르면서 자신의 목숨까지 걸고 시 출판을 돕는다. 과연 쿠미는 동주에게서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이런 설정은 대본 밖에 있는 것이지만, 배우들이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저는 첫 신을 촬영하면서 그 날이 동주를 처음 만난 날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자기 앞에 앉은 남학생이 항상 뭔가를 쓰는 것을 몇 번 봤다고 설정했죠. 그것이 한국어라는 것도 알고, 연이 나눠져 있으니까 시라는 것도 알고, 그래서 그게 뭔지 궁금한 상태라고 생각했어요. 흘낏 보려고 했을 때 그 모습으로 영화가 시작된 거예요.”

쿠미가 등장하는 신은 많지 않지만 극중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것은 다른 배우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짧은 러닝타임 동안 그들의 삶을 촘촘하게 그려내기 위해서는 배우들이 그들의 삶에 접근하는 태도가 중요했다.

“대본에 없는 내용은 마음속으로 설정을 해놔야 연기하기에 좋은 것 같아요. 사실 이준익 감독님은 이것보다 더 원초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셨어요. ‘쿠미는 동주를 사랑해?’라고 물어보셨는데, 사실 쿠미 자신도 모를 질문이에요. 이런 것에 대해 답하려면 단순히 ‘네, 아니오’로는 안 되잖아요. ‘왜?’라고 물어봤을 때 이야기보따리가 안에 있어야 하죠. 아마 없었으면 혼났을 거예요.(웃음) 이렇게 물어봐주시는 것이 좋아요. 그만큼 감독님께서 제가 캐릭터를 어떻게 접근했는지 궁금한 것이고, 저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물어보지 않았을까요.”

쿠미는 누구보다 순수하면서도 동주의 시집 출판에 가장 열정적인 인물이다. 쿠미는 목숨을 걸고 동주의 한국어 시를 일본어로 번역해서 도쿄에서 동주가 있는 교토까지 온다. 하지만 동주는 이미 몽규가 일경에게 잡힌 줄도 모르고 얼른 가봐야 한다 말한다. 이에 쿠미는 “어디 멀리 가시나 봐요”라며 서운함을 내비치고, 이런 먹먹함은 관객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쿠미가 그 시간을 얼마나 기다리고 어떤 심정으로 기차를 타고 왔는지 생각해봤는데, 너무 먹먹해지더라고요. 당시 교토까지 간다는 것은 하루 종일 기차를 타야하는 용기 있는 일이에요. 이 모습을 보고 동주가 ‘대담한 모습이 내 친구를 보는 것 같다’라고 말하고, 쿠미는 ‘그 친구도 동주의 시를 좋아하나보다’라고 말해요. 쿠미 역시 시에 이끌려서 움직이는 인물이었던 것 같아요. 이끌림이 있으면 그에 바로 부응하는 행동하는 사람 말이에요.”

감정 연기도 힘들었지만 최희서는 극중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어로 연기해야 한다는 부담감까지 가져야 했다. 초등학교를 일본에서 다녀 일본어에는 능숙했지만, 자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연기하는 것은 또 다른 도전이었다. 이전에도 드라마 ‘오늘만 같아라’에서 필리핀 사람을 연기했고, ‘킹콩을 들다’에서는 전라도 사람을 연기한 바 있다. 당시 대중들은 최희서를 진짜 필리핀 사람, 전라도 사람으로 알았고, 이번 역시 일본 사람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쳤다.

“일본어 자체는 일본 사람처럼 할 수 있으니까 캐릭터를 맡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결정되고 나니 어떡하나 싶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일본 흑백 영화와 요즘 영화 모두 많이 봤어요. 일본어 연기도 그렇지만 그 당시 여자들이 앉는 자세, 차 따르는 모습 같은 것까지 봤죠. 1940년대 이야기니까 같이 있어도 말보다는 시선으로 말하고, 대사로 드러나지 않는 태도들에 더 신경을 썼어요. 시를 좋아하는 마음도 있지만 동주를 사랑하고 동경했던 마음이 있는 만큼 그 마음을 과장하지 않고 드러내는 방법, 그 스펙트럼을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중요했어요.”
[fn★인터뷰] ‘동주’ 최희서, 윤동주의 詩를 사랑했던 ‘그 소녀’

언어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그는 현장에서 배우들의 일본어를 봐주기도 했다. 주로 강하늘과 붙는 신이 많았지만 대부분의 배우들이 본인 촬영이 아니어도 함께 응원하며 촬영했기 때문에 모든 배우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어갔다. 특히 박정민과 민진웅과는 ‘동년배니 편하게 대할 수 있는’사이이기도 하다.


“(민)진웅이는 분위기 메이커라서 이야기 주도를 잘 해요. (박)정민이는 본인 촬영 아니라도 봐줬어요. 동료가 와서 봐준다는 것은 응원이기 때문에 든든했죠. 일본어의 경우에 정민이는 딱 한 번 녹음해서 줬는데 완벽하게 연습해 왔더라고요. 목에 피가 날 정도로 연습했다고 하는데 정민이는 그럴 줄 알았어요. 2010년에도 연기하는 모습을 봤는데, 태도가 너무 좋아서 기억하고 있었거든요.”

“(강)하늘이는 대사의 1/3이 일본어였거든요. 일본어는 억양이 중요한데 하늘이가 음악을 잘 해서 그런지 터득하는게 빨랐어요. 후시 녹음 할 때 ‘이렇게 해줘’하면 ‘아~미 맞죠?’라고 말하는 식이에요.(웃음) 절대음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소름 돋았어요.(웃음) 제 일본 친구가 어떻게 이렇게 잘 하냐고 할 정도로 하늘이 일본어는 완벽해요.”

데뷔 10년 동안 작지만 강한 연기를 보여준 최희서는 앞으로 두 편의 영화가 계획돼 있다. 작은 배역이라도 좋은 작품에서 연기하고 싶어 하는 그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어릴 때부터 연기할 때가 가장 행복해서 계속 해왔어요. 하지만 최근에는 관객들이 저를 통해 못 느꼈던 감정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긴 것 같아요. SNS에서 어떤 분이 살아생전 시인으로 불리지 못했던 윤동주를 쿠미로 위로해준 것 같아서 좋았다는 말을 해주셨는데, 그 말이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누군가에게 새로운 것을 느끼게 해주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한편 ‘동주’는 지난 2월 17일 개봉해 지난 주말(4~6일) 11만 2769명의 관객를 모아 누적 관객수 92만 2468명을 동원하며, 작은 영화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leejh@fnnews.com 이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