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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 칼럼] 세상에 만능통장은 없다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3.07 16:47

수정 2016.03.07 16:47

국민재산 불려준다는 ISA 잠재위험엔 입 꼭 다물어.. 이러다 제2의 ELS 될까 걱정
[곽인찬 칼럼] 세상에 만능통장은 없다

만능통장. 그대로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튼 계좌에서 이익이 화수분처럼 솟구친다면, 상상만 해도 즐겁다. 그러나 꿈 깨라. 세상에 그런 통장은 없다. 이익만큼 위험도 큰 법이다. 최근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가 좋은 예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에 붙은 만능통장이란 별칭은 기만적이다. 깜빡 속으면 안 된다.


ISA는 운용수익에 비과세 혜택을 주는 바구니형 금융상품이다. 고객은 바구니 안에 예.적금, 채권, 펀드, 파생상품 등 여러 종류를 담을 수 있다. 1인당 연간 2000만원, 5년간 1억원까지 넣을 수 있다. 돈을 굴려 이익이 생기면 200만원까지 세금(15.4%)을 면제하고 200만원 초과분엔 9.9%의 낮은 세율을 적용한다. 대신 고객은 5년간 돈을 찾을 수 없다.

정부가 ISA를 내놓은 취지가 뭘까. 작년 8월 금융위원회 보도자료를 보자. "저금리.고령화 시대에 국민의 재산형성을 지원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게 다일까. 혹시 다른 뜻은 없을까. 최근 금융권에 ISA 고객 유치 경쟁이 불붙었다. 은행들은 자가용.골드바.해외여행권을 경품으로 내걸었다. 직원들에겐 할당량이 떨어졌다. 이게 무슨 뜻인가. ISA가 은행 수익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기를 쓰고 고객을 유치하려 한다. 수수료를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저금리는 금융권에도 고통이다. 최근 유럽과 일본 은행들의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졌다. 마이너스 금리의 여파다. 국내 은행들도 돈을 굴리는 데 애를 먹고 있다. 단순 예대마진만 갖고는 직원들의 고액 연봉을 유지하기 힘들다. 그래서 지난 몇년간 ELS로 눈을 돌렸고 작전은 적중했다. 이제 과녁은 ISA로 이동 중이다.

ISA 고객들이 예.적금만 고집하고 ELS 같은 파생상품을 외면하면 어떡하냐고? 걱정도 팔자다.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당신이 ISA를 파는 은행 직원이라 치자. 수수료율이 낮은 예.적금을 권유하면 상사의 눈총이 무섭다. 실적을 쌓아 승진하려면 수수료율이 높은 파생상품을 권유할 수밖에 없다. 금융 전문가의 추천은 의사의 권유와 비슷하다. 말을 안 들으면 손해 볼 것 같다. 전문가가 가진 정보량에 비하면 소비자는 문외한에 가깝다. 정보의 비대칭 상황에서 승자는 늘 전문가다.

ISA는 지난 1999년 금융빅뱅의 원조격인 영국에서 처음 도입했다. 영국은 2011년에 주니어ISA를 따로 뒀다. 이웃 일본은 2014년부터 일본판 ISA인 소액투자비과세제도(NISA)를 시행 중이다. NISA는 처음부터 자본시장 활성화에 목적을 뒀다. 따라서 NISA 바구니엔 투자성 상품만 담을 수 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저축에서 투자로'라는 슬로건 아래 우체국에 잠긴 돈을 투자로 끌어내려 했다. 그 매개체가 NISA다.

우리는 영국.일본을 벤치마킹했다. 한국형 ISA가 국민재산 불리기 프로젝트의 핵심이라는 금융위의 설명은 공식 보도자료용이다. 정부는 내심 자본시장 활성화와 금융사의 건전성 유지에 뜻을 두고 있을 것이다. 좋다. 다만 국민을 희생양으로 삼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 ISA는 양날의 칼이다. 원금을 까먹을 수도 있다. 대박이 될지 쪽박이 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회고록에서 "일부 금융상품은 인화성 잠옷과 마찬가지로 시장에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행동하는 용기'). ISA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같은 인화성 잠옷은 아니겠지만 분명 원금보장형 상품도 아니다. 벌써부터 현장에선 예비고객들을 상대로 '닥치고 이사(ISA)'를 권유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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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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