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그저 그런' 서울이 되지 않으려면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3.07 17:15

수정 2016.03.07 17:15

[기자수첩] '그저 그런' 서울이 되지 않으려면

몇 년 전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방문했을 때다. 배낭여행 중이던 기자에게 바르셀로나의 첫인상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수많은 자동차, 고층 빌딩, 유명 커피 체인점까지 첫 모습은 '그저 그런' 여느 대도시였다.

다소 실망스러웠던 기분을 일순간 바꾼 것은 도시를 아름답게 수놓은 가우디의 건축물이었다. 사람이 여전히 거주하는 아파트 카사밀라와 시민의 휴식처인 구엘공원, 100년 넘게 공사 중인 성가족성당까지 가우디의 작품은 도시의 역사이자 일상이다. 바르셀로나 고유의 문화와 이야기를 간직한 가우디의 건축물은 평범한 도시를 전 세계인이 선망하는 여행지로 탈바꿈시켰다.


바르셀로나를 다녀온 후 서울 시내를 거닐면 안타까움이 커졌다. 100년 남짓한 역사의 건축물을 최고의 유산으로 가꾼 바르셀로나와 달리 서울은 600년이 넘는 역사와 이야기를 가졌지만 '그저 그런' 대도시로 보이는 탓이다. 전후 고속성장 시기에야 문화를 생각할 틈이 없었다고 치자. 하지만 이후에도 획일적 도시개발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가 최근 들어 보존과 재생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지난 4일 서울시의 호텔신라 장충동 한옥호텔 건립 승인은 큰 전환점이다.

2012년부터 시작된 호텔신라의 한옥호텔 계획은 험난한 과정을 거쳤다. 시가 서울도성과 남산 예장자락이 지나는 장충동 호텔 건립부지의 경관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호텔신라 측도 서울시의 원칙을 받아들여 수차례 계획을 대폭 수정했다. 호텔신라가 서울의 역사 보전과 재생에 공감하지 않았다면 인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서울에는 경복궁과 같은 조선시대의 문화재뿐만 아니라 근현대 역사를 말해줄 건축물이 많다. 그러나 그동안 관리소홀과 대중의 외면으로 상당수 철거의 운명을 맞았다. 중구에 자리하던 스카라극장이 대표적인 예다.

최근 서울시가 소공로에 초고층호텔 건립을 추진 중인 부영그룹과 근대건축물 보존 방안을 협의 중이다. 호텔 부지인 소공동 112-9번지는 대한제국의 영빈관인 대관정 터를 비롯, 문화적 가치가 높은 근대건축물이 즐비하다. 그러나 부영 측은 이런 내용이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꺼리고 있다.
근현대 유산 보존에 관한 논의는 시민과 공개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마땅하다. 장충동 한옥호텔 역시 4년간 언론을 통해 상호간 많은 소통이 있었기 때문에 합의점을 찾을 수 있었다.


가우디 건축물을 재개발.재건축으로 밀어버렸다면 지금의 바르셀로나가 있을까. 서울을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특별한 장소로 만들어갈지, 그저 그런 대도시로 방치할 것인지 기로에 서 있다.

lionking@fnnews.com 박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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