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구의 소비자경제]

소비자보호의 역설

1960~70년 개발연대 경제성장에 힘입어 소비자들의 기본적 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되고, 1980년대 초 유신정권이 무너지고 신군부가 들어서는 혼란 속에서도 경제안정화 시책이 전개되면서 우리 경제도 산업화시대에서 소비자시대로의 전환이 시작됐다. 헌법에도 소비자 운동 권리가 규정되고, 당시 업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공정거래법과 소비자보호법(현행 소비자기본법) 제정이 이뤄졌으며 정부 내에도 공정거래위원회와 소비자보호원(현재 소비자원)이 설치됐다.

이제 누구든 소비자 권익 보호의 중요함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정부의 각 부처들도 앞다퉈 소비자 보호 부서를 신설하거나 늘리고, 소비자 보호를 위한 규제들은 규제개혁에서도 예외로 인정되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당초 의도와는 달리 소비자 보호를 구실로 한 정부 조직과 규제 권한은 늘어나는데 정작 소비자 권익은 나아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금융거래의 경우 해킹이나 정보보호를 이유로 늘어난 규제들로 인해 각종 대금결제나 송금 등의 거래가 짜증 날 정도가 되었고,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한 규제의 영향으로 각종 인터넷 사이트 이용도 복잡한 비밀번호를 요구하게 돼 어디엔가 비밀번호를 적어두지 않고는 기억하기 어려워져 오히려 개인정보 도용 위협이 증가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리고 과당경쟁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 방지를 명문으로 하는 규제들, 예컨대 최근 이루어진 TV홈쇼핑, 면세점, 인터넷전문은행 등의 허가를 통한 진입규제도 결과적으로는 경쟁을 제한해 가격이나 수수료가 인상되고 소비자 부담으로 귀착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기업들에 소비자 보호 수준을 높이라고 규제하는 것이 소비자들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이다. 기업들은 정부 규제를 지키기 위한 비용만큼 소비자들에게 가격으로 전가하려 할 것이고 상당 부분은 소비자가 부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국토부는 올해 업무보고에서 신차 결함으로 발생한 트러블에 대해 환불이나 교환을 의무화하는 기준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구체적 내용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여서 의견을 말하기 이르지만 피해구제 수준이나 방법을 정부가 정해 강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차량 결함으로 인한 피해구제는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이고 정부도 이에 조력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신차로 교환하는 것이 적합한지 혹은 무상수리가 적합한지는 정부가 정해 강제할 사항은 아니다.
이미 공정거래위원회가 정한 소비자분쟁 해결기준도 있거니와 트러블 반복 시 수리기간 중의 불편도 포함해 관련 피해를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도록 기준을 보완할 필요는 있다 하더라도 신차 교환 여부를 정부가 정해 강제하는 것은 오히려 차량 구입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차량을 값싸게 구입하려는 소비자의 권리를 해칠 수도 있다.

요컨대 소비자 선택을 대신해 정부 규제를 통해 소비자를 보호하려는 시도는 결과적으로 소비자의 권리를 해치거나 부담을 가중시킬 우려가 크다. 원론으로 돌아가지만 소비자 보호의 핵심은 소비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시장에서의 경쟁을 통해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데서 출발한다.

yisg@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