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기자수첩] 비판 가로막는 '명예훼손죄' 손질 시급

조상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3.10 18:42

수정 2016.03.10 18:42

[기자수첩] 비판 가로막는 '명예훼손죄' 손질 시급

베테랑 기자 A씨는 요새 밤잠을 설친다. 얼마 전 여권 인사로 분류된 공직자 B씨의 스캔들을 다룬 기사를 보도했다가 시민단체에 의해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 당해서다. A씨는 신뢰할 만한 제보에 근거해 기사를 작성했다. 하지만 자문을 구한 변호사로부터 진실을 말해도 공익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는 말을 들은 뒤로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이 같은 사례는 실제 취재현장에서 종종 접하는 모습이다. 공인에 대한 사실보도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형법과 정보통신망법은 허위사실뿐 아니라 사실을 적시해도 오직 공익에 관한 것이 아닌 경우에는 처벌받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면책조항이 있지만 '공익'에 대한 판단이 주관적일 수밖에 없고 세계적으로도 형사상 명예훼손죄가 폐지 추세인 점을 감안할 때 국내 제도는 거꾸로 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형사상 명예훼손죄는 1992년 뉴질랜드를 시작으로 상당수 유럽국가에서 폐지됐다. 법률선진국 가운데 형사상 명예훼손죄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과 독일도 진실한 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죄는 인정하지 않는다. 반면 국내에서 명예훼손으로 기소된 사건은 최근 10년 새 4.5배나 급증했다. 명예훼손죄는 피해자가 형사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히면 처벌할 수 없는 '친고죄'가 아니라 '반의사불벌죄'다. 피해자의 직접적인 고소가 없어도 시민단체 등 제3자 고발에 의해 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권력 유지 방편으로 악용될 소지가 많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최근 형법상 '사실 적시 명예훼손'에 대해 형사처벌을 자제하라고 권고했다.

언론 자유의 가장 큰 가치는 강제력을 독점하고 있는 국가 및 기업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기능이다. 다만 언론은 수사기관이 아니어서 권력기관의 불법행위에 대해 제보자의 불완전한 정보를 근거로 의혹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녔다.
따라서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명예훼손의 경우 적어도 권력기관의 직무와 관련한 사안에 대해서는 보도 당시 허위임을 알았다는 것으로 국한시키는 게 필요하다. 진실인 경우에도 명예훼손을 따지는 '진실유포죄'와 '반의사불벌죄'는 표현의 자유 보장과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막기 위해서라도 폐지돼야 한다.
감시하는 눈과 비판하는 입이 없는 사회는 부패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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