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CJ, 현대차 그리고 레고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3.20 17:18

수정 2016.03.21 09:14

[데스크 칼럼] CJ, 현대차 그리고 레고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유지태는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변심한 연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웬만큼 나이 먹은 사람이면 알 수 있듯이, 사랑은 원래 변하는 겁니다. 사랑의 유효기간은 길어봐야 3년 안팎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그래서 한 이동통신사 광고에서 김민희가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사랑은 움직이는 거"라고.

좀 생뚱맞아 보일지 모르지만 기업이나 비즈니스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연인의 마음이 변하고, 사랑이 움직이듯이 소비자의 마음과 시장 상황은 시시때때로 바뀌게 마련입니다. 기업이 변화하고 혁신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지난주 본지 출판면은 세 기업에 대한 탐구와 분석을 담은 세 권의 신간을 소개했습니다. CJ와 현대자동차 그리고 레고의 성공 스토리를 흥미롭게 그린 'CJ의 생각'(열림원), '현대자동차의 기민한 생산방식'(한울아카데미), '레고 어떻게 무너진 블록을 다시 쌓았나'(해냄)입니다.

지난 1995년 CJ(당시 제일제당)가 영화사업 진출을 선언했을 때 많은 사람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룹 오너의 취향에 따라 사업이 결정된 거 아니냐며 신사업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0여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보면 설탕과 밀가루를 만들던 CJ의 문화사업 진출은 '신의 한 수'가 된 듯합니다. 실수처럼 보였던 알파고의 신수(新手)가 알고 보니 판을 뒤집는 묘수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은, 당시의 엉뚱하지만 담대한 투자가 아니었다면 전 국민을 행복하게 한 '응답하라 1988'도,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미생'도, '명량'이나 '베테랑' 같은 통쾌상쾌한 영화도 만나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싸구려 이미지가 강했던 현대자동차가 글로벌 시장에서 독일의 벤츠나 BMW, 일본의 렉서스 등과 경쟁하며 고급 브랜드로 우뚝 설 수 있었던 배경에도 변화와 혁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의 기민한 생산방식' 저자인 조형제 울산대 교수는 그 원동력을 선발주자인 도요타의 방식에서 탈피한 현대차만의 독자적 생산방식에서 찾고 있습니다. 도요타가 린 방식(lean system)에 기반한 일관성으로 성공했다면, 현대차는 문제를 즉시 발견해 신속하게 반응하는 이른바 '기민한 생산방식'으로 경쟁 우위를 확보했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모방에서 혁신으로 발빠르게 변화하지 않았다면 위풍당당한 제네시스와의 만남은 조금 더 늦춰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계 1위 장남감 회사인 레고의 사례는 변화와 혁신이 무조건적 선(善)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1990년대 중반 9000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레고는 21세기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면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합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따라잡기 위해 레고가 선택한 길은 사업영역 확장이었습니다. 교육 및 미디어 사업을 새로 시작하고 테마파크 건설에 열을 올린 시기가 바로 이때입니다.
그러나 무모하고 무절제한 혁신은 레고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었습니다. 파산 직전 새로 내놓은 극약처방이 아니었다면 레고는 영영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했는데, 이때 내놓은 묘수가 바로 '브릭 바이 브릭(brick by brick·차곡차곡)'입니다.


기본으로 돌아가 무너진 블록을 다시 쌓아올리기. 이 또한 또 다른 의미의 혁신입니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문화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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