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청년실업 예산이 아깝다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3.21 17:01

수정 2016.03.21 17:01

한해 2조원가량 쓰지만 정부 정책은 낙제점 수준
차라리 지자체에 맡기면 어떤가
[곽인찬 칼럼] 청년실업 예산이 아깝다

전라도 땅끝 해남은 말하자면 포퓰리즘이 왕성한 곳이다. 박철환 군수의 복지정책은 경기도 성남 이재명 시장의 뺨을 친다. 첫째를 낳으면 300만원, 둘째는 350만원, 셋째는 600만원, 넷째 이상은 720만원의 출산 장려금을 준다. 셋째부터는 신생아 건강보험도 들어준다. 물론 공공산후조리원도 있다. 출생신고를 하면 즉시 소고기.미역.내의를 집으로 보내준다.


박 군수의 출산 정책은 통했다. 해남군의 합계출산율은 2012년부터 3년 내리 전국 최고(2014년 2.43명)를 기록했다. 전국 평균(1.2명)은 그 반밖에 안 된다. 해남군의 기적은 외국인의 눈에도 신기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작년 11월 뉴욕타임스지는 '해남군 목표 이루다-산아제한에서 출산장려로'라는 제목으로 이 이야기를 다뤘다.

경기도 남경필 지사는 올해부터 '일하는 청년통장'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중.저소득 근로 청년층을 대상으로 3년 내 1000만원짜리 통장을 만들어주는 사업이다. 청년은 한달에 10만원씩 3년간 붓는다. 여기에 경기도가 월 10만원, 사회복지기금이 5만원을 보탠다. 청년 몫은 360만원(120만원×3년)이지만 이자까지 합치면 1000만원이 된다는 계산이다. 보기에 따라선 청년에게 그냥 돈을 주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다.

지자체 복지를 보는 중앙정부의 태도는 이중적이다. 해남군 포퓰리즘엔 한마디 말이 없다. 남 지사의 청년통장 사업도 군말 없이 허가했다. 반면 보건복지부는 이재명 시장의 청년배당, 박원순 서울시장의 청년수당에 퇴짜를 놓았다. 국외자의 눈에 청년 통장.배당.수당은 오십보 백보다. 차이가 있다면 이재명.박원순은 중량감 있는 야당 소속 시장이라는 것뿐이다.

지금처럼 중앙정부가 지자체 복지에 일일이 간섭하는 건 무리다. 지역 사정은 지자체가 제일 잘 안다. 게다가 중앙정부의 청년실업 정책은 빵점에 가깝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청년 일자리 사업은 13개 부처에서 57개 사업을 시행 중이다. 한마디로 중구난방이다. 효과가 있을 리 없다. 2월 청년실업률은 사상 최고치인 12.5%로 치솟았다. 아르바이트 등을 포함한 체감실업률은 20~30%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중앙정부의 최대 약점은 경쟁자가 없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외국 사례를 참고하지만 그야말로 참고용이다. 경쟁자가 없으니 실패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긴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반면 지자체 간 경쟁은 눈앞의 현실이다. 지사.시장.군수가 연임에 성공하려면 이웃 지자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 청년 일자리 예산은 2조1000억원 규모다. 괜히 용쓰지 말고 이 돈을 지자체에 맡기면 어떨까. 예산을 허투루 쓰는 곳도 있고 요긴하게 쓰는 곳도 있을 것이다. 불량 지자체장은 4년마다 실시되는 지방선거에서 거르면 된다. 중앙정부의 청년정책은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 지자체에 기회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현대 경제학의 핵심 개념인 주인.대리인 문제는 중앙.지방정부 관계에도 적용된다. 누구든 제 일은 열심히 하고 남의 일은 건성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 무상급식은 지자체가 주인이다. 자기가 시작한 일이고 자기 돈을 쓰기 때문에 열심이다. 반면 무상보육은 지자체가 대리인이다. 중앙정부의 일을 대신하는 구조다. 대리인은 결코 주인처럼 일하지 않는다. 무상보육을 놓고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싸움이 그치지 않는 이유다. 청년실업 대책도 지자체가 주인이 되면 달라질 수 있다.

기본적으로 지방자치를 보는 눈이 달라져야 한다. 강력한 중앙집권제는 자율과 개방을 중시하는 21세기와 어울리지 않는다. 시어머니처럼 시시콜콜 간섭하는 나라에선 알파고와 같은 혁신이 나올 수 없다.
고정관념을 깨는 알파고의 묘수에 바둑계는 탄성을 질렀다. 일자리 정책에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낙제생 중앙정부가 예산을 틀어쥔 채 지자체에 실력 발휘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은 불공평하고 어리석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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