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차장칼럼] 판사님의 '실전경험'..사회부 장용진

장용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3.28 19:39

수정 2016.03.28 19:47

[차장칼럼] 판사님의 '실전경험'..사회부 장용진

"왜 이제야 오십니까? 우리 아들이 죽었을 때 그 때 왔어야지 왜 이제야 오십니까?"

10년 전 쯤 군 의문사로 아들을 잃은 어느 어머니가 기자를 만나자 복받치듯 울음을 터뜨리면서 쏟아 놓은 말이다.

그 어머니의 아들은 2000년대 초반 강원도 어느 부대에서 근무하다 스스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부대 측은 "자살이 확실한데다 유족들이 언론과 접촉을 원하지 않는다"며 언론의 취재를 허용하지 않았다. 심지어 한 부대 관계자는 "가정불화 때문에 자살한 것으로 수사결과가 나오니까 유족들이 (취재진을) 꺼리는 것 같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시작도 하기 전에 막혀버리는 셈이라 왠지 찜찜했지만 사인이 확실하고 유족들이 취재를 원하지 않는다는데 어쩔 수 없었다.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 되는 듯 했다.


하지만 영원한 비밀은 없었다. 사건 발생 2년여가 지나 숨진 병사의 동기들이 전역한 뒤 언론에 제보한 진실은 참혹했다.

숨진 병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숱하게 폭행을 당했다. 동작이 느리다, 암기사항을 제대로 외우지 못한다 등등 폭행의 이유는 무궁무진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피해자의 시신은 온통 멍투성이었다.

부랴부랴 취재에 나섰지만 이미 너무 긴 시간이 흐른 뒤였다. 대대장을 비롯해 상당수 부대 간부들은 타 부대로 전출을 갔고 가해자들은 이미 전역을 한 뒤였다. 몇몇 증언이 있었지만 기사를 쓰기에는 증거가 턱없이 부족했다.

유족들은 사건 당시 언론이 적극적으로 취재에 나섰다면 은폐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기자들을 원망했다. 알고보니 당시 부대 측은 "언론도 자살사건에는 관심이 없다"며 유족들에게 장례를 빨리 치르라고 종용했다. 그러니까 군부대는 언론과 유족을 단절시켜 놓고 양쪽에 각각 다른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뻔한 거짓말이었다. 전화 몇 통이면 확인할 수 있었는데 공보장교의 번지르르한 거짓말을 너무 쉽게 믿었던 것이 문제였다.

그 이후 기자는 '피해자 측이 언론취재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군 부대는 물론이고 다른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을 취재할 때도 마찬가지다. 어떤 형태로든 당사자들의 의사를 직접 확인한다. 실전경험을 통해 얻은 뼈아픈 교훈인 셈이다.

최근 대법원의 판결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아쉬움을 표시하고 있다. 대법원이 소수자 권리 보호에 소극적이라는 것이 이유다. 법리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지만 '현실을 알고 있다면 이런 판결을 내렸을까' 싶은 경우도 많다.

대법원 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한 해고노동자는 "판사님들은 해고를 안 당하니 우리의 아픔을 모르는 것이냐"고 원망하기도 한다.

법정에 제출되는 서면을 보면 참 그럴 듯 하다.
다들 어쩌면 그렇게 거짓말과 억지를 점잖게 하는지 놀라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이래서 '법정은 거짓말의 경연장'이라는 말이 나오는구나 싶을 정도다.
당황스러운 것은 단 한차례 어깨너머 보기만 했어도 속지 않을 거짓말도 통할 때까 있더라는 점이다.

언젠가 '피해자가 청바지를 입고 있어서 강간을 할 수 없었다'는 피고인 주장을 확인해 보기 위해 직접 승용차에서 부인을 상대로 '현장검증'을 해봤다는 어느 판사님의 회고가 떠오르는 것은 너무 높은 기대치 때문일까?
ohngbear@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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