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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구조조정 늦어질수록 손해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3.29 17:13

수정 2016.03.29 17:13

[여의나루] 구조조정 늦어질수록 손해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AI) 알파고와의 세기의 바둑대결을 관심 있게 지켜보면서, 이제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우리 현실 안에 멀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얼마 전 정부는 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AI 기술 육성에 향후 1조원 이상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AI와 같은 신성장산업의 육성을 위해서는 과잉생산 설비 등 비효율적인 산업구조와 좀비기업 등 부실기업에 대한 구조조정과 건전한 산업생태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쓰러져야 할 한계기업들이 정부의 각종 지원으로 유지되는 것은, 한정된 투자재원이 생산성 높은 부분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음으로써 자원배분 왜곡현상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외부 감사대상기업 2만7995개 중 한계기업의 비중은 2014년 10.6%로 열 개 기업 중 하나 꼴이다. 최근 들어 조선. 철강.석유화학 등 주력 산업의 경쟁력이 글로벌 수요부진으로 급속하게 약해지고 있다.
지난해 조선업계는 대우해양조선의 5조5000억원 적자를 포함해 8조원 이상의 적자를 냈다. 철강산업도 중국의 과잉공급으로 인해 오래전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말 우리나라 기업의 은행대출, 비은행대출 및 회사채 등에 의한 채무는 2400조원 규모로 추정된다. 국내외 수요가 부족한 상황에서 과잉공급과 글로벌 경쟁 격화로 기업수익성이 크게 저하된 것이 주요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미국.유럽연합(EU).일본 등 선진 경제권이 적극적 산업구조조정을 하는 동안 문제 산업과 부실기업에 대한 우리의 소극적 구조조정 대응 태도는 경제 전체에 큰 위기를 가져오는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올해 들어 중국은 과잉공급 상태에 있는 철강.석탄.시멘트산업의 과잉생산설비를 감축하고 사양산업 재편을 추진하며, 3대 철강회사 중 하나인 우한철강의 직원 8만명 중 최대 5만명을 내보내는 충격적인 구조조정계획을 발표했다. 긴박한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도 조선. 해운산업 등에 대한 구체적인 구조조정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우리와는 크게 대비된다.

우리의 부진한 이유를 경제전문가들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법과 제도 등 구조조정 절차는 갖추고 있으나 이를 적극적으로 운용하지 못하는 것에서 찾고 있다.

구조조정에 저항하는 기업 소유주와 강성 노조, 채권단 내 구조조정 메커니즘의 취약성 그리고 정치논리에 따라 소극적인 정부의 태도와 정치권 때문에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미뤄서는 안된다.

조선.철강.해운 등 문제 산업에 대해서 정부 주도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부실기업은 기업주와 채권단이 중심이 되어 구조조정을 하되 정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기업 소유주가 구조조정을 판단할 수 있도록 산업 실태에 대한 분석자료를 제공하는 것도 기업이나 채권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최근 '잃어버린 20년'의 일본 경제가 2026년 이후에 다시 떠오르는 나라로 거론되고 있는 것은, 그간 꾸준히 추진해온 구조조정 정책과 산업재편 덕분에 산업경쟁력이 크게 오르고, 구조불황법, 구조전환법, 사업혁신법 등 거의 10년 단위로 입안해 시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난 5년간 370조원에 이르는 인수합병을 이뤄내면서 산업체질을 크게 개선했기 때문이다.
선진 경제권은 물론 세계가 강도 있는 산업구조조정 정책을 펴고 있는 때에 우리는 선거 등 국내 정치일정에 묶여 뒷짐만 지고 있다. 구조조정에는 실업 등 큰 고통이 따른다.
그렇다고 미룰수록 뒤에 감당해야 할 비용은 더 큰 것이다.

윤대희 전 국무조정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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