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순의 느린 걸음]

축제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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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에서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할 일꾼을 뽑는 선거를 마쳤다. 정치인들에게 선거는 당락을 건 치열한 싸움이겠지만, 투표권을 가진 국민들에게 선거는 오랜만에 귀한 대접을 받는 축제였다. 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재미를 한껏 즐길 수 있는 큰 축제였다.

축제라는 게 늘 그렇지만, 한참을 즐기고 돌아서면 일상에 맞닥뜨린다. 축제의 즐거움이 클수록 복잡한 일상으로 복귀하는 게 아쉽지만 축제를 치르느라 미뤄둔 숙제가 한둘이 아니다. 차분히 숙제를 챙기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축제 뒤에 할 일이다.

얼핏 떠오르는 숙제만 따져봐도 복잡한 문제가 한가득이다.

부실이 드러난 대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결정이 큰 숙제다.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당위성에는 국민도 정부도 동의하지만, 선거를 앞두고 복합한 계산 때문에 결정을 미뤘다. 시내면세점정책 개선도 그렇다. 5년짜리 면세점 면허기간을 10년으로 늘리겠다는 정책 윤곽은 잡아놨는데 역시 선거를 코앞에 두고 정부는 결정을 보류했다.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M&A) 심사도 미뤄놓은 숙제다. SK텔레콤이 지난해 12월 1일 CJ헬로비전 M&A 심사를 신청했으니 130일 이상 심사가 진행 중이다. 세계적으로도 손꼽힐 만큼 긴 심사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 이해가 걸려 있는 M&A 심사라 신중히 하기도 했겠지만, 5개월째 심사를 할 만큼 복잡한 사안은 아니다.

미뤄둔 숙제들은 정부가 이해당사자 간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문제가 대부분이다. 그럴 리 없겠지만 호사가들은 선거에 혹여라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까 걱정하는 정부가 차일피일 결정을 미루는 것 아니겠느냐는 뒷담화도 내놓곤 한다.

이유야 어찌 됐건 이제 축제는 끝났다. 이제는 숙제를 해야 할 때다.

정부는 그동안 미뤄뒀던 결정을 해야 한다. 고(GO) 할 것인지, 스톱(STOP)할 것인지 신호를 내려줘야 한다.

신호등이 꺼진 채 모든 차가 정지해 있다면 도시가 돌아갈 수 있겠는가. 빨간불이든, 파란불이든 신호를 줘야 자동차가 움직이고 도시가 생명력을 찾을 것 아닌가.

사실 경제에 가장 큰 독은 정책결정이 미뤄지는 것이다. 고장난 신호등 아래 모든 자동차가 일시에 멈춰 있는 셈이다.

그래서 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불확실성이라고 하지 않는가.

정책결정이 지연되면서 기업들도 경영활동을 멈췄다. 대기업 구조조정은 진행도 아니고, 끝난 것도 아닌 채로 서 있다. M&A 심사에 걸려 있는 CJ헬로비전은 5개월째 투자도, 서비스 개선도 멈췄다. CJ헬로비전에 셋톱박스를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은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5개월째 공장 가동을 멈춘 채 말라가고 있다.
그러면서 하루라도 빨리 선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이제는 미뤄둔 정책을 결정할 때다. 축제는 끝났다.

cafe9@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