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한집에 살 뿐 대화단절..'투명가족' 갈등 커진다

김규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4.26 17:20

수정 2016.04.26 17:20

가정상담센터 상담 건수 5년 사이에 2배로 급증
불화로 독립 1인가구 늘어.. 전문가 "대화만이 해법"
#. "집안에 있으면 피가 마릅니다. 하소연할 데도, 갈 곳도 없습니다. 차라리 다투면 나을 텐데 아예 투명인간 취급을 합니다." 서울 동대문구에 거주하는 취업준비생 유모씨(31)는 함께 살고 있는 가족과 대화를 단절한 지 2년째다. 시작은 유씨가 3년간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마치고 2년 전 귀국한 뒤 아버지와 갈등을 빚으면서부터다. 아버지는 틈만 나면 "유학까지 보내줬는데 취직도 못하고 있냐"며 그를 문제아 취급했다.
유씨는 그런 아버지와 심하게 다툰 후 한 집에서 살고 있지만 2년째 서로 대화를 하지 않고 있다. 아버지와 갈등의 골이 깊어지다 보니 이제는 어머니, 여동생과의 소통마저 단절됐다. 유씨는 "아침에 일어나면 곧장 집 밖으로 나가 밤늦게 들어와 잠만 청한다"며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을 벌고 있는데 취직해 집을 나가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가족 간 갈등이 심해지면서 서로 대화조차 나누지 않는 일명 '투명가족'이 늘고 있다. 이는 노후 문제, 취업 등 세대마다 지닌 불안요소로 인해 가족 구성원 간 갈등이 깊어져 발생하는 현상으로 풀이된다. 가정 내 왕따 문제는 예방과 사후대처가 가능한 학교·직장 내 왕따와 달리 발생을 확인하기가 어렵고 갈등 상황을 조정하기도 어려워 물밑의 사회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매년 가정상담센터 방문 증가…왜?

26일 한국건강가정진흥원에 따르면 가정생활 등에 대한 고민으로 가정상담센터를 찾는 인구가 지난 2009년 9만4021명에서 2014년 16만7888명으로 급증했다. 가족 문제로 상담을 받은 이들은 '부부 문제'와 '자녀 문제'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부부 문제로 상담한 7만4845건 중에는 '부부관계 갈등'과 '의사소통 문제'가 각각 4만4021건(58.8%), 9894건(13.2%)으로 가장 많았다. 자녀 문제는 4만3220건 중 '부모·자녀 갈등'이 1만6923건(39.2%)으로 상담 내용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서울 송파구 건강가정지원센터 관계자는 "가족 간 불화는 보통 가정에서 해결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며 "상담센터를 찾아온 가족들도 갈등이 이미 상당히 깊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조정을 하기도 굉장히 어렵다"고 말했다.

가족 내 불화는 1인가구 증가로 이어졌다.

서울연구원이 발간한 '가족과 떨어져 사는 서울 시민은 얼마나 될까'에 따르면 지난 2014년 서울에 거주하는 홀로 사는 가구는 전체 359만가구 가운데 약 44만가구로 조사됐다. 이는 열 가구당 한 가구에 달하는 수치로, 이들이 홀로 살게 된 원인으로는 '가족 간의 불화'(16.7%)가 주된 이유로 꼽혔다.

직장인 최모씨(31)는 "항상 부모님은 두 분이 여행을 가도 아무 말이 없고, 성인이 된 나를 두고 늘 두 분끼리 상의하시니 자식으로서 소외된 기분이 들었다"면서 "심하게는 따돌림을 받는 기분도 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대화 자체를 하지 않으니 상대하기도 껄끄럽고, 차라리 집을 나가 혼자 살고 싶다"고 털어놨다.

■'가정 내 왕따' 대화로 풀어야

'가정 내 왕따'는 한 번 당하기 시작하면 정신적 피해도 크고 사실상 구제할 방법도 마땅치 않은 것이 문제다. 전문가들은 가족 내 왕따 문제는 발견하기도 어렵고, 기관을 찾더라도 갈등 조정이 어려운 실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울 동작구 건강가정지원센터 관계자는 "가족이란 모든 것을 터놓는 곳인데 왕따를 당한다면 정신적으로 더 피해가 커 가족 모두에게 상처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가정문제상담소 김미영 소장은 "가족 간 표현을 하지 못해 문제가 심화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 같은 상황에는 가족 구성원 가운데 가장 가까운 구성원에게 접근해 대화를 통해 원인을 찾아보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조언했다.
김 소장은 "대화를 시도할 때도 우선 자신의 상황을 돌아보고 상대의 상황을 이해한다며 공감을 이끌어낸 뒤 자신을 이해받도록 유도하는 것이 순서"라고 덧붙였다.

integrity@fnnews.com 김규태 김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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