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구순의 느린 걸음] '세종차사'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4.27 17:31

수정 2016.04.27 17:31

[이구순의 느린 걸음] '세종차사'

한국 경제의 큰 버팀목이던 조선과 해운산업이 구조조정 한파에 시달리고 있다. 거대한 산업이었던 만큼 후폭풍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산업 자체가 다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는 거의 없다. 자동차산업 전문가들은 10년 내 자동차산업 지형이 크게 바뀔 것이라고 예측한다. 자율주행차 때문이다. 자율주행차 시대에 차는 더 이상 구입해서 소유하는 물건이 아니라 필요할 때 빌려 쓰는 운송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자동차 판매대수 경쟁을 벌이는 현재 자동차산업도 그때가 되면 커다란 폭풍을 맞게 될 것이라고 한다.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은 이미 로봇에 일자리를 내주고 있다.

산업구조가 변하고 있다. 이미 고전처럼 된 말이지만, 정말 눈이 돌아갈 정도로 변화가 빠르다.

그 변화에 눈감고 있는 것은 변화의 한가운데, 변화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볼 당사자들뿐이다. 그러다 결국 변화의 파도에 삼켜진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의 이해하기 어려운 해명자료를 하나 받았다.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M&A) 심사가 이유 없이 길어지고 있는 것을 비판하며,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최장 기간 심사를 진행한다는 언론기사 내용에 대한 반박이었다. 공정위는 과거 이번 사건보다 더 길게 심사한 사례를 조목조목 열거했다.

해명자료를 보면서 한숨이 나왔다. 지금 심사기간을 무한정 늘리고 있는 것이 자랑거리도 아닌데, M&A 심사를 길게 끈 사례가 많았다는 것을 해명이라고 떡하니 내놓는다.

요즘 통신업계는 '세종차사'라는 말이 유행이다. 세종시에 있는 공정위에 SK텔레콤-CJ헬로비전의 M&A 문제를 심사해 달라고 5개월 전 서류를 보냈는데 통 소식이 없어 답답한 심정을 함흥차사에 빗대 표현한 말이다.

하루가 멀다고 산업 지형이 바뀌고, 그 변화를 주도하면서 성장해야 할 ICT산업 대형 기업들은 M&A건에 신경을 쏟느라 일손을 놓고 있다. 그러는 사이 올 초 국내에 진출한 넷플릭스는 벌써 한국 영화에 600억원 가까운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 아시아 전체 콘텐츠시장을 노리는 '통 큰' 투자다.

그러잖아도 규제에 대한 고민 따위 없이 거침없이 성장하는 구글의 '알파고'에 질투 섞인 부러움이 가시지 않았는데, 이번엔 또 넷플릭스가 부럽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에 부아가 치민다.


M&A 심사가 발목만 안 잡았더라면 우리 통신업체들도 이런 통 큰 콘텐츠 투자를 시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공정위도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이해하려 노력해 보지만 쉽지 않다.

그러니 괜한 루머에 자꾸 귀가 솔깃해진다.
공정위가 스스로 결정하기 어려우니 차일피일 시간을 끌다가 20대 국회가 열리면 슬그머니 국회의 판단으로 미루려 한다는….

'경제검찰'이라고, 공정한 잣대로 법에 근거해 모든 심사를 진행한다고 스스로 강조하는 공정위 본연의 역할을 곧이곧대로 믿고 싶다.

cafe9@fnnews.com 이구순 정보미디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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