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석학에 듣는다]

근거없는 디플레이션 공포

지령 5000호 이벤트

대니얼 그로스 유럽정책연구원장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디플레이션 공포에 압도당해왔다. 잘못된 일이다. 근거 없는 공포에 사로잡혀 일을 그르치고 있다.

일본이 대표적이다. 2013년 수십년에 걸친 물가하락은 일본은행(BOJ)이 전례 없는 공격적 통화정책을 펴도록 만들었다. 지표 인플레이션(물가상승률)이 한동안 올랐지만 상승을 이끄는 요인들-경쟁적인 엔 평가절하와 증세-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제 일본은 다시 디플레이션에 버금가는 상태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일본 경제는 언론 보도로 형성된 느낌과는 반대로 빈사상태와는 거리가 멀다. 실업은 사실상 사라졌다. 고용률은 사상 최고치를 계속 경신하고 있고, 1인당 가처분소득은 꾸준히 오르고 있다. 이른바 '잃어버린 10년' 기간에도 일본의 1인당 소득은 미국이나 유럽만큼 올랐고 고용률은 상승했다. 디플레이션이 중앙은행이 믿는 것과 달리 그다지 무시무시하지는 않다는 점을 시사한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목표에 도달하는 데 실패했다고 해서 경제적 재앙이 나타나고 있다는 어떤 조짐도 없다. 성장은 여전히 탄탄하고 고용은 도드라지게 증가하고 있다.

중앙은행들의 현 접근방식은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소비자물가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잘못된 목표다. 소비자물가가 떨어지는 이유는 단순하다. 에너지와 기타 원자재 물가가 지난 2년간 절반 이하로 폭락했기 때문이다. 하락세는 일시적인 것으로 중앙은행은 이를 무시해야 한다. 유가 상승 시기 소비자물가 오름세를 무시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중앙은행들은 대신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로 나타나는 소득증가율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는 빚에 허덕이는 정부와 기업들에는 중요한 문제다. 이 기준으로 보면 디플레이션은 없다. (GDP 디플레이터라 부르는) GDP 물가지수는 선진국의 경우 평균 1~1.5% 상승했다. 유로존(유로 사용 19개국)은 1.2% 올랐다. 유럽중앙은행(ECB)의 '2% 근접' 목표보다는 낮지만 ECB가 경기부양을 위해 공격적인 통화정책 동원을 확대하는 것을 정당화할 만큼은 아니다.

게다가 명목 GDP 성장률은 장기금리를 웃돌고 있다. 일반적인 경우 장기금리가 GDP 성장률보다 높으면 토마 피케티가 지목한 급속한 부익부 포인트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지금은 반대다. 유로존에서조차 명목 GDP 성장률은 올해 3%에 육박할 전망이다. 이는 신용 붐이 절정이던 2007년만큼이나 신용여건이 우호적임을 뜻한다. 20년 동안 이만큼 좋았던 적은 없었다.

그러나 중앙은행들은 여전히 인플레이션 목표치 도달을 고집하고 있다. 디플레이션의 조그마한 단서라도 나오면 하강 악순환을 촉발해 수요둔화와 물가하락을 부추길 것으로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 실수다.

물론 디플레이션 악순환이 나타날 수는 있다. 그 결과는 심각할 것이다. 실질금리가 상당히 높은 플러스 수준이라면 수요는 붕괴되고, 채무자들이 빚을 갚기 불가능한 수준까지 물가를 끌어내릴 수도 있다. 이 같은 하강 악순환은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을 촉발했다. 어떤 해에는 물가하락폭이 20~30%에 이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근처에도 못 간다. 실제로 명목금리는 제로에 가까운 반면 광범위한 물가지수들은 오르고 있다. 금융여건이 매우 우호적인 데다 내수가 여전히 활발해 거의 모든 영역에서 실업이 위기 이전 수준만큼 낮아졌다.

유로존은 선진국 가운데 유일하게 실업이 높고 따라서 디플레이션 하강 위험이 있다. 그렇지만 유로존에서조차 GDP 성장률은 잠재성장률을 미약하나마 웃돌고 있어 GDP 갭 잔여분이 점차 좁혀지고 있다.

나아가 유로존 실업이 높은 단 한 가지 이유는 경기침체 기간 내내 경제활동 참가율이 계속 증가했다는 데 있다. 그리고 실제로 고용은 위기 이전 수준으로 복귀하고 있다.
이는 디플레이션을 우려하는 이들이 경고하는 것과 정반대 상황이다.

증거는 명백하다.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비합리적인 디플레이션 악순환 공포를 극복해 수요 자극에 안달복달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정리=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