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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트럼프와 유비무환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5.02 17:41

수정 2016.05.02 17:41

[fn논단] 트럼프와 유비무환

우리가 흔히 국난 극복의 역사라 하여 추앙해 마지않았던 그 수많은 역사상의 승전보는 대부분 주변 강대국과의 전투에서 크게 승리한 사례들이라 할 수 있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이라든가 강감찬의 귀주대첩, 권율의 행주대첩이라든가 이순신의 한산도대첩은 모두 주변 강대국과의 싸움에서 불굴의 의지로 영웅적인 승리를 일궈낸 쾌거였던 것이다. 이러한 쾌거를 통해서 우리가 의도했던 바는 우리 민족의 눈부신 승리들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싶었던 민족적 자부심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역사가 이민족의 침략과 지배하에서 참으로 오랫동안 질곡의 삶을 살기도 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과 그들의 가혹한 압제와 수탈, 그리고 그 참혹함에서 역사상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었던 임란 시 일본의 만행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밖에도 1894년 전봉준, 손병희 등의 동학의병을 계기로 하여 비화된 청일전쟁의 참상 등은 우리가 절대로 잊어서는 안될 엄숙하고도 엄연한 역사적 참극이라 하겠다.

이인직은 그의 소설 '혈의 루'에서 청일전쟁 당시 평양성 전투 장면을 이렇게 그려내고 있다.
"성중에는 울음 천지요, 성 밖에는 송장 천지요, 산에는 피난꾼 천지라, 어미가 자식 부르는 소리, 서방이 계집 부르는 소리, 계집이 서방 부르는 소리, 이렇게 사람 찾는 소리뿐이라." 이 모든 역사상 참상들의 공통점은 거기에 대부분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고려시대엔 몽골이, 병자호란엔 청나라가, 임진왜란엔 일본이 각각 관여했고 청일전쟁 당시엔 청나라와 일본, 나아가 삼국간섭으로 러시아, 프랑스, 독일이 추가되기도 했다.

주변 강대국이 미치는 영향력과 관련해서 오늘날의 국제관계도 그다지 크게 변화된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장기간의 한·미 안보체제 공고화로 한반도의 안보상황은 상당기간 안정을 유지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급성장과 함께 북한의 핵무장화는 이제 국제질서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중국과 북한의 결속은 미국과 일본의 결속을 강화시켜, 국제관계는 북핵을 중심에 둔 신냉전의 시대로 접어들 전망이다. 한국 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싼 미·중의 신경전이나 일본의 점증하는, 자연재해나 경기불황 돌파를 위한 강경파들의 무장화가 신냉전 기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예의 주시해야만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공화당 대선 선두주자인 트럼프의 한국 방위비 무임승차 발언은 심상치가 않다. 언론은 그것을 막말이라고 폄하하고 있지만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그럼에도 그가 공화당 대선주자 중 가장 유력한 후보자라는 사실이다.
그의 정치적 발언들-유색인종 차별, 멕시코 국경선 강화, 낙태여성 처벌, 한국·일본의 핵무장 허용 등-이 상당수 미국민들에게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미국의 경제상황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아닐까. 설사 트럼프가 당선되지 않는다 해도 미국 경제가 악화된다면 한반도 안보 기상에 먹구름이 낄 것은 자명하다 할 것이다. 설마 무슨 일이 일어날까마는 그것도 이 급변하는 북핵 시대에 철저하게 대비해 나갔을 때나 하는 말이지 그렇지 않다면 또 어떤 위기에 봉착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 않겠는가.

김진기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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