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금융일반

[현장클릭] 혁신 외치던 금융당국의 모순

이환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5.06 16:41

수정 2016.05.06 16:41

[현장클릭] 혁신 외치던 금융당국의 모순

"은행가란 99퍼센트 확실하더라도 1퍼센트가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손대지 않는다." 일본 여류 작가 야먀자키 도요코의 '화려한 일족'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다. 돈을 만지는 뱅커는 전통적으로 '모험(수익)'보다 '안정(손실회피)'을 추구한다는 말이다.

지난해 인터넷전문은행 사업권 승인을 앞두고 한 금융위원회 고위 관계자도 비슷한 말을 했다.

"금융과 기술을 결합한 '핀테크'는 지나가는 바람이 아니라 태풍이 될 것이다. 하지만 보수적인 은행 내부로부터의 혁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정부가 인터넷은행을 기존 금융사가 아닌 정보기술(IT)업체 위주로 출범시키려는 이유다."

작년 11월 전문가 집단 심사 결과, 카카오와 KT 중심의 컨소시엄이 각각 사업자로 선정됐다. 인터파크(I-뱅크)는 탈락했다. 하지만 혁신을 강조했던 금융위가 결국 '안정'을 택했다는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의 후일담은 놀랍다.

그는 "I-뱅크는 온라인 마켓의 빅데이터를 활용해 신용평가 모델을 만들고, 중소상공인에게 대출해주는 모델로 혁신성은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며 "다만 향후 자영업자 위주의 대출이 부실화 위험이 높아 탈락한 것"이라고 말했다.

모험대신 자신의 안위를 택하는 은행가를 비판했던 금융당국이 자가당착에 빠진 것이었다.

앞선 금융위 관계자는 "은행은 혁신이 나오기 힘든 구조"라며 "뛰어난 아이디어를 내도 개인이 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보상은 1~2년 승진이 빨라지는 것인데 반해, 만약 사업이 실패하면 그는 사실상 조직에 도태된다"고 지적했다.

최근 중금리 대출 시장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개인간(P2P) 대출업체 규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P2P업체 피플펀드는 전북은행과 함께 반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은행.P2P 협업 대출 모델을 준비해 왔다. 지난해 12월에는 금융위로부터 '은행이 부수 업무로 P2P대출을 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도 받았다. 하지만 이후 사업은 수차례 무산됐고, 최근 금융감독원은 금융위 유권 해석을 '서면'으로 제출하라며 사업 개시 시점을 사실상 무기한 연기했다.

금감원의 이 같은 조치는 향후 P2P업체가 늘어나고, 이로 인해 투자자 손실 등의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것이 업계의 해석이다.

즉 향후 은행과 P2P대출 협업모델에서 부실이나 사기가 발생할 경우 그 문책이 은행 관리감독기구인 금감원에 돌아올 수 있고, 이때 금융위의 유권해석에 따른 조치였다는 해명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다수의 투자자에게 돈을 빌려, 시중은행 금리보다 저렴하게 대출을 해주는 P2P대출은 미국 등 핀테크 선진국에선 이미 활성화 됐다.

혁신은 파괴에서 나온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은행가를 비판하던 당국도 한 번쯤 거울을 통해 자신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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