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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칼럼] 전기차 갈라파고스, 한국

이재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5.11 17:17

수정 2016.05.11 17:17

日 전자업계 신기술 외면하고 제 기준만 고집하다가 몰락
'테슬라 쇼크'에 한국만 역주행
[이재훈 칼럼] 전기차 갈라파고스, 한국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가 '반값 전기차'인 모델3를 세상에 선보이자 일부 언론은 이를 '아이폰 쇼크'와 비교했다. AP통신은 "모델3를 예약하려고 몰린 인파는 막 출시된 아이폰을 사려고 애플 스토어에 몰린 사람들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묘사했다. 2007년 혜성같이 등장한 애플의 아이폰은 휴대폰시장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재편했다. 노키아.삼성.소니.LG 등 기존 휴대폰업체들은 피처폰 성공신화에 매달리다가 시장을 내줬다. 테슬라의 모델3도 기존 자동차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기념비적인 제품이 될 것이란 평가가 많다.

모델3는 예약 접수 한달 만에 주문대수 40만대를 돌파했다.
출시도 안된 자동차가 이런 엄청난 관심을 모은 사례가 없다. 기본가격이 3만5000달러로 테슬라 모델S의 절반 수준이면서 1회 충전 후 주행거리는 346㎞로 기존 전기차의 2배에 달한다. 또 다른 전기차 강자인 GM도 모델3와 경쟁할 만한 전기차 '볼드 EV'를 올 연말 출시하기로 했다. 여러 전문가들은 2016년이 전기차 대중화의 원년이 되리라고 점친다. 블룸버그는 2020년이 되면 전기차의 구입.유지비용이 내연기관 차보다 싸질 것으로 봤다. 130년 된 내연기관 차의 몰락을 점친 것이다.

세계 자동차업계는 '테슬라 쇼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아이폰 쇼크'의 교훈 때문인지 이번만은 대세에 뒤처질 수 없다며 전기차 전쟁에 뛰어들었다. 미국이 선도하고 일본.중국이 추격하던 시장에 독일이 가세해 무한경쟁이 펼쳐질 기세다. 디트로이트.제네바.베이징 등 최근 열린 국제모터쇼의 주인공은 전기차였다. 최근 벤츠의 모기업 다임러의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은 "왜 테슬라와 경쟁할 신차가 없냐"고 격하게 따졌다. 디터 제체 다임러 회장은 "주행거리 500㎞의 전기차를 2019년까지 개발하겠다"고 답해야 했다. 아우디와 폭스바겐도 500~600㎞를 달리는 전기차를 내놓을 계획이다.

각국 정부도 전기차산업 키우기에 혈안이다. 독일은 최근 12억유로(약 1조6000억원)를 지원하는 전기차 부양책을 발표했다. 독일 정부는 전기차 시대가 열리면 독일차가 시장 주도권을 잃을 것이란 위기감에 서둘러 대책을 마련했다. 프랑스는 2020년까지 200만대 전기차를 보급할 계획을 내놓았다. 네덜란드의 경우 아예 2025년부터 휘발유와 디젤을 사용하는 신차 판매를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중국의 '전기차 굴기'는 무서울 정도다. 중국 정부는 2020년까지 전기차 500만대를 보급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전기차업체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비야디(BYD)는 덕분에 세계 1위 전기차업체로 떠올랐다. 전기차 분야만큼은 최고 강국이 되겠다는 야심이 대단하다. 미국은 더 말할 것도 없다. GM.포드 등 전통 자동차업체와 테슬라.애플 등 정보기술(IT) 강자들이 뒤엉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세계 자동차시장은 이렇게 급변하는데 우리나라 상황은 전혀 딴판이다. 지난해 말 현재 국내 등록 전기차는 5767대에 불과하다. 충전시설은 공공 337개를 포함, 400개 남짓이다.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에 따르면 전기차를 포함한 한국의 친환경차 기술 경쟁력은 1위 미국의 40% 수준에 그친다. 토종업체인 현대차는 친환경차 개발 방향을 수소차로 잘못 잡았다가 전기차 기술에서 뒤처졌다. 다음 달에 아이오닉 일렉트릭을 출시하지만 주행거리 180㎞로 모델3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전기차는 정부의 육성정책이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역주행하고 있다. 외국과 달리 전기차 구입 보조금을 줄이고 있고 지난달에는 급속충전 요금을 유료화했다. 충전시설 확충은 굼뜨기 짝이 없다. 태동기의 전기차 수요를 아예 죽여버리는 꼴이다.

이대로 가면 한국은 전기차에 관한 한 갈라파고스 섬처럼 될 수밖에 없다.
과거 일본 IT 업체들은 자기 기준만 고집하며 세계시장에서 고립되면서 쇠퇴했다. 노키아 등 휴대폰업체들도 마찬가지였다.
테슬라 쇼크에 적응하지 못하면 경쟁에서 낙오되고 시장을 내줄 수밖에 없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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