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세계 석학에 듣는다] 중앙은행을 위한 변명

송경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5.13 17:43

수정 2016.05.13 17:43

모지머 햄플 체코중앙은행(CNB) 부총재
[세계 석학에 듣는다] 중앙은행을 위한 변명

선진국 중앙은행에 대한 비판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주된 공격은 이런 거다. 통화정책 담당자들이 2000년 이후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행동해 권한을 남용하고, 경제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명백한 오류다.

비판론자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건 현대 중앙은행이 그저 인플레이션(물가상승)과 싸우고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장기 물가안정 유지가 그것이다.
사람의 체온처럼 물가 수준은 심각한 합병증 없이 너무 높거나 너무 낮을 수 없다. 중앙은행은 과도한 수요로 인한 인플레이션과 싸우는 것처럼 취약한 수요로 인한 디플레이션(물가하락)과도 싸우는 '행동가'가 돼야 한다.

두 가지 싸움 모두가 완전한 좌우대칭이지만 대중의 평가는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특히 돈 문제에 관해 보수적인 사람이 많은 국가가 그렇다. 체코도 그중 하나다. 예금대비대출비율(예대율.LTD)이 100%를 크게 밑도는 소액 저축인이 많은 국가다. 체코인들은 인플레이션을 두려워한다. 지난해 인플레이션이 13년 만에 최저를 기록하고, 내가 부총재로 있는 체코국립은행(CNB)이 2013년 이후 디플레이션 위험을 피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데도 그렇다.

2008년 이후 선진국 중앙은행들에 대한 또 다른 일반적 불평은 통화정책이 재분배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게 어떻다는 건가? 어떤 것이건 모든 통화정책 행위는 부를 재분배한다. 금리인상은 저축인들을 기쁘게 하는 반면 금리인하는 대출인들에게 보탬이 된다. 수입업자들은 자국 통화가치 상승을 선호하지만 수출업자들은 하락을 좋아한다. 어떤 식으로건 통화정책은 서로 다른 시간에 서로 다른 그룹에 서로 다른 영향을 반드시 미친다. 이는 결코 실수가 아니다. 이건 통화정책의 본질이다.

일부에서는 또 어쨌거나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 목표 도달에 실패했다는 비판도 더한다. 중앙은행의 행동주의가 허가받은 것도 아닐뿐더러 효과도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처럼 모순된 비판을 같은 문장에 쓰는 경우도 있다. 이는 마치 누군가에게 공포탄을 쐈지만 어쨌거나 그 사람을 죽이고 다치게 했다는 주장과 마찬가지다.

현실은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정말 흥미진진한 방식으로- 세계 금융위기 기간과 그 이후에 물가안정과 통화의 구매력을 안정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이들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경제는 재앙적 디플레이션과 대규모 자산가격 폭락, 금융과 실물 부문의 완전한 붕괴에 직면했을 것이다. 명백히 강도 높은 대응은 위기에 대한 올바른 대응이었다. (또 다른 위기를 부를 수 있을 만큼 강도가 높았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내재가치가 없는 탄력적인 통화시스템에서는 통화의 구매력이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하기 위한 통화량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중요한 건 물가안정이지 통화량이 아니다. 각국 중앙은행의 부풀려진 대차대조표는 2008년 이후 많은 경제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반영한다. 그런 의미에서 중앙은행들은 구매력을 유지하고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필요한 행동을 취했다. 이들에게 '행동주의'는 없었다. 오직 충족해야만 하는 영원한 사명만이 있었을 뿐이다.

교만처럼 들린다면 몇 가지 증거를 들겠다. 사람들은 지갑으로 투표한다. 통화의 구매력이 2008년 이후 크게 위축됐다면 그들은 자연스레 모국 통화의 대체재(외환, 귀금속, 또는 저축의 다른 대안)를 찾았을 것이다. 이는 선진국에서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많은 나라 중앙은행이 지금 인플레이션 목표에 크게 못 미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중앙은행들은 대개 경제의 이상적 '온도'를 연간 2%가량의 인플레이션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이는 유쾌하지는 않지만 재앙적인 건 아니다. 물가하락이 부분적으로 저유가 형태를 띤 공급 -수요가 아닌- 충격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특히 더 그렇다. 이 충격은 소비자에게 보탬이 되고, 물가안정에도 위협이 되지 않는다.
최소한 석유 순수입국에는 그렇다.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취한 접근방식은 올바른 것이었다.
사실 그 덕분에 경제는 벼랑 끝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정리=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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