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재무학회칼럼]

작은 정부, 느슨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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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1월 대통령선거를 앞둔 미국이 어수선하다. 미국도 선거 때가 되면 정치가 화두로 등장하지만 평소에는 일상생활에서 정치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은 것 같다. 사실 미국은 처음부터 작은 정부, 느슨한 정치를 지향해 왔다고 할 수 있다. 1776년 독립을 선언한 미국은 1789년에야 초대 대통령을 선출한다. 독립전쟁을 치르느라 그랬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정부의 지도자도 그냥 '프레지던트'라고 했다. 대통령이란 말은 매우 권위적으로 들리는데 '프레지던트'는 그저 회의를 주재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회사 사장, 대학총장, 은행장, 기관의 장, 국가 지도자 등 크든 작든 단체의 지도자는 다 프레지던트다. 최초의 성문헌법인 미국 헌법은 7개 조항으로 간결하다. 나중에 27개 수정조항이 첨부되긴 했지만 여기서도 정치를 크게 만들지 않겠다는 의도가 보인다. 반면 한국은 전문, 본문 130조, 부칙 6조로 된 방대한 헌법을 가지고 있다.

한국은 국회의원 수가 300명으로 인구 약 17만명당 한 명을 선출한다. 반면 미국은 상.하원의원 수가 총 535명으로 약 70만명당 한 명의 대표자를 선출한다. 권력이 분산된 합중국 통치구조의 미국은 인구 3500만명이 넘는 캘리포니아주나 50만명도 안되는 와이오밍주나 똑같이 두 명의 상원의원을 선출하고 있어 다른 나라에 비해 인구당 의원 수가 아주 적다.

미국 정당은 당사도 따로 없고 당대표, 당의장, 최고위원, 고문같이 한국의 정당들이 즐비하게 가지고 있는 감투도 많지 않다. 한국에서는 몇 사람만 모이면 정치 얘기가 나오고, 정치인들의 이름이 잘 알려져 있고, 정당은 너무 자주 바뀌어 헷갈릴 정도다. 정부는 크고 작은 일에 권력의 손을 뻗치고 있다.

처음 미 대륙에 정착할 때나 서부를 개척할 때, 이민 와서 새로운 삶을 일굴 때 미국인들은 모든 일을 정부의 보호 아래 하기보다는 자기 스스로 다스리는 정신으로 살아왔다. 전깃불에서 달 착륙, 인터넷, 수많은 노벨상과 발견, 발명,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정부나 누구로부터의 간섭과 방해를 받지 않는 자유정신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의 성공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작은 정부, 느슨한 정치'는 필요할 때 결집된 정치력, 강한 통치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문제를 일으킨다. 9.11 테러, 허리케인 등이 터졌을 때 정부의 대응력, 통제력이 문제가 되는 것을 보았다. 미국에서는 정부가 저만치 물러나 있기 때문에 의료보험이 없는 사람이 수천만명에 이른다. 대학 교육비도 엄청 비싸고 총기사고가 빈발하지만 제대로 손을 쓰지 못한다.

세상이 달라졌다. 안보와 테러, 의료, 교육, 환경, 이민, 복지와 소득분배, 총기와 범죄 등 여러 문제들이 점점 더 커지고 복잡해지고 있어 미국에서도 정부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은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지만 서로 강력한 지도자임을 자처하면서 당선되면 통치력을 강화하겠다고 천명하고 있어 누가 되든 정부의 기능과 역할이 커질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작은 정치, 제한된 정부라는 미국의 이상이 바뀔 때가 되었나 보다. 미국 대선이 남북문제를 비롯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문제, 월스트리트 규제 등과 관련해 미국 기업, 미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 한국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기에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장석정 美 일리노이주립대학교 경영대 교수

■약력 △66세 △서울대학교 법학사 △미국 코넬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석사 △메릴랜드대학교 대학원 경영학박사 △일리노이주립대학교 경영대 교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