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트럼프, '환상'을 지킬 수 있을까

며칠 전 참석한 결혼식 피로연장에서 미국인 신랑은 말했다. "다음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는 분의 골프클럽에서 피로연을 하게 돼 영광입니다." 하객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웃음소리는 곧 사그라들었고 '여론조사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을 앞섰다더라' '트럼프 대통령되는 꼴은 못보겠다. 클린턴 찍자' 등 대선에 대한 진지한 얘기들이 하객들 사이에서 오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말대로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도전은 이제 더 이상 농담거리가 아니게 된 것이다.

피로연이 열린 곳은 로스앤젤레스 인근에 위치한 트럼프 소유의 골프클럽이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절경을 갖춘 곳이었다. 트럼프의 이름을 딴 6개의 골프장 중 한 곳으로 트럼프가 인수하여 호화급 골프장으로 재개장했다고 한다. 트럼프는 미국과 유럽에 최고급 골프장 17개와 골프 리조트를 보유하고 있으며 그 가치가 총 5억7000만달러에 달한다고 자랑하고 있다.

골프클럽뿐만 아니다. 트럼프는 부동산 개발에서부터 카지노, 호텔, 항공, 와이너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500개 넘는 기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168개의 수입원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는 자신의 순자산이 100억달러가 넘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가 사람들의 농담거리에서 공화당 후보에까지 오르게 된 데에는 이 같은 '성공한 사업가' 이미지가 큰 역할을 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트럼프가 사업가 자질을 발휘해 무역과 국가안보 등의 분야에서 국익을 극대화하고 산더미 같은 국가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지지자들의 믿음을 흔들리게 할 만한 소식이 최근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가 100억달러 부자도 아니고 성공한 사업가도 아니라는 내용이다.

미국 경제전문매체 포브스는 최근 트럼프의 순자산이 100억달러가 아닌 45억달러라고 평가했다. 트럼프가 자신의 순자산을 2배가량을 부풀렸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경영방식도 도마에 올랐다. 미국 경제전문매체 포천은 5월호에서 '트럼프식 경영'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트럼프가 자만심 때문에 회사를 위기에 빠뜨리거나 파산하게 한 사례를 열거하며 "트럼프는 빚더미에 앉아 있으면서도 자기 이름값만 중요하게 생각한 경영자"라고 꼬집었다. 트럼프는 호텔 사업이 부채위기에 빠져있던 1996년 브랜드(트럼프호텔)를 바꾸는 것을 조건으로 투자하겠다는 제안을 뿌리쳐 트럼프호텔 주가를 추락하게 했다. 트럼프는 또한 1980년대 후반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닌 호텔과 항공 사업에 무모하게 뛰어들어 플라자호텔과 항공사 이스턴셔틀을 매입해 모두 파산시켰다. 트럼프의 카지노 사업은 그가 회장을 맡은 15년간 17억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2012년 공화당 대선후보였으며 최근 공화당 내 '반트럼프' 전선에 앞장서고 있는 밋 롬니는 "트럼프가 '성공한 사업가'라고 주장하는데 그는 천재 비즈니스맨도 아니고 그저 재산을 상속한 뒤 트럼프 항공, 트럼프 대학, 트럼프 보드카, 트럼프 매거진 등을 파산시킨 인물"이라고 깎아내렸다.

세금 의혹도 짙어지고 있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클린턴과 미 언론들이 그의 납세내역 공개를 요구하고 있지만 트럼프는 '별 내용 없다' '상관할 바 아니다' '미국 연방국세청(IRS) 감사 이후 공개하겠다'며 거부하고 있다. 미국 대선후보들에게 납세 내역 공개 의무는 없으나 주요 정당 후보들은 40여년간 정치적 관례로 이를 공개해왔다. USA투데이는 트럼프가 납세내역 공개를 거부하는 데는 세금 미납과 과세조정 관련 소송 및 분쟁이 100여건에 달하기 때문이라고 19일 보도했다.

트럼프는 허세 또는 이미지메이킹을 사업전략으로 삼아왔다.
트럼프는 1987년 출판한 저서 '협상의 예술'에서 "난 사람들의 환상을 노린다"며 "난 그것을 진실된 과장이라 부르며 이는 과장의 순수한 형태이자 매우 효과적인 홍보의 형태"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사업가로서의 허세와 과장은 매력적으로 비춰질지 모르지만 대통령 후보에게는 '부정직한' 이미지로 타격이 될 수 있다. 앞으로 5개월 남짓 남은 대선 기간 동안 트럼프에 대한 지지자들의 '환상'이 지켜질 수 있을지 궁금하다.

서 혜 진 로스앤젤레스 특파원 sjmary@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