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주영 칼럼]

국민보호는 국가의 무한책임

살생물제 관리 부실하게 하고 정부는 책임이 없다고 하니 국민은 각자도생 하란 말인가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해 정부는 책임이 없다고 한다.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최근 국회 답변에서 이 사건이 "장삿속만 챙기는 상혼과 제품 안전관리 법제 미비가 중첩돼 빚어졌다"고 했다. 장삿속은 기업 탓이고, 법제 미비는 국회 탓이니 정부가 책임질 일은 아니란 투로 들린다. 윤 장관은 의원들의 거듭된 추궁에도 끝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정부는 국민을 보호할 책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가습기 살균제가 처음 팔린 것은 1995년이다. 2011년에 판매가 금지될 때까지 500만개 이상이 팔렸다. 개당 두 명이 사용했다고 가정하면 적어도 연인원 1000만명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는 146명이다. 자신이 피해자인 줄도 모르고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부지기수일 것이다. 사건의 진행 과정은 길고 복잡하다. 그래서 어느 장관 시절 어느 공무원의 책임이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책임 없다고 해선 안 된다. 정부가 독성물질이 든 제품을 막아내지 못했고 그 결과로 영.유아와 어린이, 임산부 등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정부는 처음 제조·판매 단계에서 인체에 해로운 독성물질인데도 위해성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 '법이 없어서'라거나 '몰라서' 못했다고 한다. 국민이 위험에 빠졌을 때 정부는 법이 없으면 새 법을 만들어서라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는 헌법 36조 규정은 폼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에는 법안 제출권과 시행령 제정권도 있다. 그러므로 '법이 없어서'는 면책사유가 될 수 없다. '몰라서' 부분은 이해는 간다. 시판 중인 화학생활용품은 3만5000여가지에 이른다. 정부는 시판 당시 가습기 살균제가 팔리는지조차 몰랐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책임이 모두 면해지지는 않는다. 국민의 목숨을 지키는 일은 국가의 무한책임 영역이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은 이후 가습기 살균제가 내뿜는 독성물질에 16년 동안이나 노출된다. 이 중 정부가 처음으로 위험을 감지한 것은 11년이 지난 뒤였다. 2006년에 서울아산병원이 주도한 어린이 폐렴환자의 이상증세 원인을 밝히는 연구에 질병관리본부 직원이 참여했다. 그러나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으며 피해자들의 질환은 괴질로 남았다. 사실은 이때가 범인을 잡을 절호의 기회였다. 정부에 무능의 책임이 있다.

질병관리본부가 전면적 역학조사에 나선 것은 2011년이다. 그것도 자체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서울아산병원의 역학조사 요청에 따른 것이다. 질본은 조사에 착수한 지 4개월 만에 범인을 찾아냈다. 이후 가습기 살균제는 더 이상 팔리지 않았다. 위험 발생으로부터 안전조치가 취해지기까지는 무려 16년이나 걸렸다. 정부는 태만의 책임을 벗을 수 없다.

검찰이 수사에 나선 것은 이로부터 다시 5년이 흐른 뒤다. 그동안 피해자 가족들은 정부가 왜 독성물질을 팔게 놔뒀는지 조사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검찰은 미적대기만 했다. 올 초부터 판매기업을 수사하기 시작했지만 정부 관련부서에 대한 수사는 여전히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검찰이 수사해주지 않으니 피해자 가족들은 정부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정부는 "평균적인 공무원에게 모든 물질의 위해성 확인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주장을 펴고 있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 정부도 할 얘기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가습기 살균제를 팔도록 놔둔 정부의 책임은 어떤 이유로도 사라지지 않는다.
정부가 법의 형식논리 뒤에 숨어 책임을 부인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적절한 보상과 재활을 위해 그들을 돕는 일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 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무한책임이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주지 않으면 그 국민은 어디에다 호소해야 하는가.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