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칼럼]

미궁에 빠진 조선업 구조조정


대우조선해양의 지난 20일 자구안 제출 번복은 단순 해프닝이었는지, 말 못할 내부 속사정 때문이었는지 확실치 않다. 대우조선해양은 20일 오전만 해도 "오후 자구안 제출이 확실하다. 다만 내용은 공식적으로 밝힐 순 없다"는 게 공식 입장이었다. 하지만 저녁 가까운 시간 돌연 "오늘 제출을 못했다. 이유는 정확히 모른다. 좀 더 보강하자는 의미일 것"이라며 입장을 급히 바꿨다.

대우조선이 자구안을 제출하기로 결정했을 때 대주주 산업은행에 동의를 구하지 않았을 리는 만무하다. 대우조선이 자구안과 관련, 산은과 계속 협의해왔던 건 주지의 사실이다. "오후 제출하기로 했다"는 것은 산은이 그렇게 결정했다는 뜻으로 보는 게 맞다. 하지만 오후에 갑자기 상황이 달라졌다. 그렇다면 산은이 제출계획을 엎었을까. 그보다는 산은이 아닌 제3자가 급히 제동을 걸었을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대우조선 자구안 내용을 훤히 들여다보며 제출일을 최종 승인한 산은이 갑작스럽게 날짜를 바꾼 것은 뭔가 다른 이유가 있지 않았나 싶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대우조선은 시간을 더 벌었다. 그사이 자구안은 뭔가 추가되고 빠지고 할 것이다.

지금 국내 산업계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조선업 구조조정은 대우조선의 5조원대 손실 폭탄에서 시작된 거사로 볼 수 있다. 채권은행은 돈을 빌려준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도 조단위 적자를 내자 '업' 전체를 손보겠다며 구조조정의 칼을 힘차게 빼든 상태다. 하지만 칼을 휘두르겠다고 덤비는 이들이 바로 지금 조선업 사태의 사실상 책임자들이다보니 업계에서 '영'이 서지 않고 있는 게 문제다. 일개 기업 주인 노릇도 제대로 못해놓고 업 전체를 조정할 능력이 있을까. 업계 관계자 대부분이 이런 의심과 회의를 갖고 있다.

조선업이 이 지경까지 온 이유를 철저히 규명하는 작업은 누구 소관이어야 하나. 대우조선 부채비율이 7000%대까지 불어나는 동안 경영진은 대체 무엇을 한 건지, 조사는 지금 제대로 되고 있는 건가.

조선업 구조조정은 미궁에 빠지고 있는데, 영웅을 자처하는 무리는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정치권은 23일 노무현 대통령 서거 7주기 행사장 가는 길에 거제를 찍고 잠시 포즈를 취했다. 의원들은 작심한 듯 "부실 책임을 묻겠다" "실업대책을 강구하겠다" 선거철 공약 비슷한 말들을 쏟아내고 봉하마을로 떠났다. 계획은 세워두고 뱉은 말인지, 일단 말이라도 해보자 해서 나온 것인지 알 길은 없다.

여야 일각에선 정부 발주를 늘려 조선업이 활황을 이룰 때까지 버틸 수 있게 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정치권 발언 중 가장 눈에 가는 대목이긴 하다. 업계에선 지금을 견뎌내면 살 수 있다는 이야기도 한다. 선박 발주 가뭄이 끝없이 이어질 수는 없는 일이어서 지금 가뭄을 버티면 길이 생길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이런 수주 혹한기, 정부 발주물량은 대환영이다. 하지만 이런 제안은 좀 더 일찍 나왔어야 한다. 정부 발주를 대신할 우리 국적 해운사는 정부가 도와준다 해도 지금 선박 주문을 낼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시장에선 "정부, 은행 간섭으로 가는 길이 더 힘들다"는 말이 떠돈다. 영업 관계자들은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말만 많은 구조조정에 업계 피로감이 계속 쌓이고 있다.

jins@fnnews.com 최진숙 산업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