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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값 못하는 퇴직연금.. 90% 이상이 일시금 수령

임광복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5.24 17:34

수정 2016.05.24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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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도입 11년.. 작년 55세 이상 퇴직자 93% "한번에 목돈으로"
중간정산도 많아.. 사실상 연금 역할 못해
#. 서울에서 중소기업에 다니는 50대 중반의 직장인 A씨는 3년 전 전세금이 오르자 아파트를 구입했다. 당시 자금이 부족해 퇴직연금 중간정산으로 2000만원을 미리 받았다. 지난해 회사를 퇴직하면서 퇴직연금을 정산해보니 약 1300만원이 남았다. 매달 연금으로 받으려니 액수가 크지 않아 일시금으로 수령했다. 당장 목돈을 쓰고 나니 국민연금이 나오는 65세까지 막막하기만 하다.

이름값 못하는 퇴직연금.. 90% 이상이 일시금 수령

퇴직연금이 도입 11년을 맞았지만 사실상 연금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55세 이상 퇴직자의 93%가 퇴직연금을 일시금으로 받고 있다. 은퇴자들은 퇴직연금을 일시금으로 받아 쓰고, 생계유지조차 어려워지는 빈곤노령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24일 금융투자업계와 자본시장연구원 등에 따르면 55세 이상 중 퇴직연금을 일시금으로 받은 수령자는 92.9%(4만2129명.2015년 기준)였다. 퇴직금처럼 한번에 목돈을 받아 은퇴 후 연금으로 받지 못하는 것이다. 반면 연금 수령자는 7.1%(3213명)에 그쳤다. 금액으로 보면 일시금 수령 비중이 더 높다.

같은 해 일시금 수령자가 수령한 금액은 총 9778억원으로 전체의 97.4%를 차지했다. 연금으로 받은 경우는 2.6%(262억원)에 그쳤다. 권역별로 퇴직연금의 일시금 수령비율은 손해보험사 97.1%, 은행 93.3%, 생명보험사 91.4%, 증권사 85.1%로 나타났다. 퇴직연금은 중간퇴직, 이직, 실직 때마다 일시금으로 정산돼 은퇴까지 보존되지 않고 임시방편으로 사용돼 문제로 지적됐다.

김성일 제로인 퇴직연금연구소장은 "대다수 직장인이 퇴직연금 중간정산 등으로 적립금이 적어 연금보다 일시금으로 받고 있다"며 "은퇴 시점에 자녀 결혼 시기와 맞물려 목돈이 쓰이는 등 우리나라는 노후 준비가 거의 없는 상황이라 참담하다"고 말했다. 근로자 평균 은퇴연령은 52세지만 우리나라 평균수명은 81.9세여서 퇴직 후 30년을 연금 등에 의존해 살아야 한다. 특히 국민연금 지급이 65세 이후로 늦춰져 은퇴 후 약 10년 이상의 '소득절벽' 기간에 퇴직연금이 버팀목이 돼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퇴직연금은 55세부터 수령이 가능하다.

우리의 경우 노령층인 66세 이상의 빈곤율은 48.3%에 달한다. 노인층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평균(12.6%)보다 4배 이상 높다. 고령자 자살률도 한국은 노인 10만명당 55.5명으로 OECD 평균(21.7명)보다 2.5배 높다. 모두 OECD 가입국 중 최고다.

퇴직연금 적립금은 2011년 49조9000억원에서 126조4000억원(2015년 말 기준)으로 4년 새 2.5배 이상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퇴직연금이 양적으로는 성장했지만 실질적인 은퇴 후 생계대비 용도로 사용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들은 퇴직연금 중간정산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지만 우리는 문턱이 낮다. 중간정산 요건은 무주택자가 전세금 혹은 주택임대차 보증금이 부족할 때, 자기 명의로 집을 구입할 경우, 근로자 및 가족 중 6개월 이상 질병.부상으로 장기요양이 필요할 때, 법원에서 파산선고를 받은 경우, 개인회생절차 개시결정 처분 선고, 자연재해나 천재지변으로 재정적 피해를 크게 봤을 경우 등이다.


자본시장연구원 장지혜 연구원은 "퇴직연금은 일시금 수령이 절대적이어서 노후소득으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가입자들은 중간정산 등으로 쓰거나 연금세제 혜택 부족, 퇴직금으로 인식해 생활자금으로 소진하는 등의 사유가 많다"고 밝혔다.

lkbms@fnnews.com 임광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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