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순의 느린 걸음]

지상파 망치는 '정부의 과보호'

부자가 3대 못간다는 말이 있다. 부모가 어렵사리 재산을 일궈놓은 뒤 자식들이 그 재산을 못 지킨다는 말이다.

보통 부모세대가 갖은 고생을 겪으며 재산을 모은 뒤에는, 자식세대가 자신과 같은 고생을 겪지 않도록 애지중지 키우게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귀하게 자란 자식들이 재산을 키우기는커녕 있는 재산도 못 지키는 나약한 사람이 되는 일이 다반사다. 그래서 귀한 자식은 매로 키운다는 말도 있다. 귀한 자식일수록 엄하게 키워야 자생력을 갖게 된다는 말이다.

이 말이 자식교육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산업도 마찬가지다.

요즘 미디어산업의 흐름이 딱 그렇다. 지상파 방송 얘기다. 지상파 방송의 귀중함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야말로 국민의 보편적 문화와 알권리의 기초가 지상파 방송이다. 모든 국민이 집에서 TV는 볼 수 있어야 한다. 한 달에 몇 만원씩 내고 케이블TV나 인터넷TV(IPTV)를 볼 수 없는 국민도 지상파 방송을 통해 재해나 재난 정보를 얻어야 생명을 지킬 수 있고, 기초적 문화생활을 할 수 있다.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의 수준은 그 나라 국민의 기초 문화수준을 좌우한다.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BBC가 있기 때문에 영국인들의 문화적 소양이 글로벌 표준보다 높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그런데 요즘 미디어정책 흐름을 보면 정부가 귀한 자식인 지상파를 애지중지하면서 떡을 바구니째 안겨줘 오히려 자생력을 송두리째 뺏고 있는 것 같은 모양새다.

지상파 방송사의 광고가 줄어드는 것이 안타까운 나머지 광고총량제를 도입하더니, 중간광고도 허용하겠다는 소리를 슬금슬금 내놓고 있다. 전 국민이 무료로 볼 수 있도록 하겠다며 울트라고화질(UHD) 방송용 주파수를 무료로 나눠주더니 이제는 UHD 방송에 암호를 걸어 유료방송사에 콘텐츠 값을 더 받아 챙기겠다는 지상파 방송사의 요구를 암묵적으로 인정해주고 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우리 지상파 방송의 현실을 한번 따져보자. 일단 지상파 방송이 진정 국민의 알권리와 문화수준 향상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따져볼 일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지상파 방송의 콘텐츠가 높은 문화적 수준을 인정받는가. 가끔은 문화콘텐츠 산업에서 경쟁력을 갖춘 기업에 흠집을 내면서 경쟁자의 싹을 자르는 일은 없는가. 보편적 시청권을 내세우면서 결국 콘텐츠 값 몇 푼 더 받으려는 꼼수를 쓰지는 않는가. 지상파 방송의 현재 위치를 꼼꼼히 따진 뒤 떡 바구니를 안겨줄 것인지, 엄하게 종아리를 쳐 자생력을 갖추도록 할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귀한 자식은 매로 키운다는 옛말이 왜 나왔는지 곱씹으면서 말이다. 지상파 방송은 전 국민의 너무 귀한 문화수단이기 때문이다.

cafe9@fnnews.com 이구순 정보미디어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