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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美 대법관 인선 신경전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5.26 17:03

수정 2016.05.26 17:03

[여의나루] 美 대법관 인선 신경전

지난 2월 타계한 스캘리아 대법관은 30여년간 미국 연방대법원 보수진영의 대변자였다. 진보파의 대모 격인 긴즈버그 대법관은 애도성명에서 스캘리아 대법관과 첨예한 이념적 대립을 보이면서도 합의나 판결문 작성 과정에서 완벽한 소통을 하였다면서 문서화된 텍스트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는 다르지만 헌법과 사법제도를 존중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하나다"라고 했다.

스캘리아 대법관에 대한 애도기간이 끝나자마자 공화당과 민주당은 곧바로 후임 대법관 인선 문제를 둘러싸고 전투에 들어갔다. 미국 대법관 자리는 본인이 사망하거나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 한 비지 않는다. 우리의 임기 6년제와는 판이한 종신제다. 대통령은 종신제 대법관을 통해 자신의 이념적 성향을 사법적 판단에 관철시키려고 하다 보니, 진보와 보수 진영 모두 대법관 인선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런 대법관을 내년 1월 퇴임하는 오바마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느냐는 것이 미국 대선 정국의 핫이슈가 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공화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워싱턴DC 연방항소법원장인 메릭 갈랜드를 신임 대법관으로 지명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를 '보수.진보 양측으로부터 인정받는, 중도적 대법관'임을 강조하고 공화당이 '트럼프 돌풍'을 우려한다면 상원에서 대법관 후보자 인준을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갈랜드는 아내가 결혼을 승낙한 이래 생애 최고의 영광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다음 날 토마요르 대법관은 개인적 배경과 전문적 경험이 다른 대법관들이 서로 배우고 생각을 보완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 대법관 8명 전원이 아이비리그 출신이고 그중 5명이 가톨릭, 3명이 유대계라고 했다. 갈랜드 지명자 역시 하버드 로스쿨 출신의 유대계라 대법원 구성의 다양성 부족을 에둘러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상원 의석의 과반을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은 미국 국민이 선거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면서 대법관 인준 절차를 거부하고 있다. 공화당 대선 후보 트럼프는 보수 유권자 어필 차원에서 자신의 헌법적 가치를 대표하는 대법관 후보군 11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20여년간 사안에 따라 보수와 진보를 넘나들었던 오코너 전 대법관은 미국과 미국인이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한 자리를 차기 대통령이 임명할 때까지 미루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취지로 공화당 입장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유명한 '로마의 휴일' 시나리오의 작가 달턴 트롬보의 일생을 다룬 영화 '트롬보'를 보면 대법관의 정치이념 성향이 유·무죄의 운명을 가를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냉전 체제하에서 미국의 반공주의자에게는 공산주의자가 마녀였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할리우드의 어두운 과거사가 됐지만, 당시 반공산주의 광풍은 트롬보를 비롯해 공산주의자로 몰린 소위 '할리우드 10'을 1947년 의회 반미활동조사위원회의 청문회 증언대에 세운 뒤 이들 모두를 의회모독죄로 기소한다. 트롬보가 대법원에 기댄 마지막 희망은 1949년 여름 두 자유주의자 대법관 머피와 루츠레츠의 사망으로 사그라진다.

올 9월에는 우리 대법관 1인의 임기가 만료된다. 그런데 지난 4월 총선 결과 국회가 여소야대로 되면서 신임 대법관 임명에 다소 미묘한 문제가 생길 것 같다.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대법관 지명자도 야당이 국회에서 반대하면 임명이 어려워진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한 해인사 방장 원각 스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진보·보수 모두 너와 나를 내려놓고, 일에 따라 일의 성공을 위해 진보도 되었다 보수도 되었다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일이 잘되기 위해 어느 입장이 필요한지를 먼저 생각하면서 상대의 시각을 과감히 수용하는 대법관은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이주흥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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