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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응답하라, 산업은행

이병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5.26 17:03

수정 2016.05.26 17:03

[차장칼럼] 응답하라, 산업은행

지난 2013년에 STX조선이 법원 손에 맡겨졌으면 지금처럼 허무한 결과를 맞았을까. 이제 와서 가정법을 동원해봤자 무슨 소용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2013년 STX조선 자율협약 이후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선언할 때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복기해봐야 한다.

글로벌 조선, 해운업이 예상보다 급격하게 안 좋아져서 어쩔 수 없이 법정관리를 선택했다는 변명은 그만해야 한다. 금융당국 공무원과 산업은행 직원들에게 세금으로 월급을 주는 이유는 변명을 듣기 위한 게 아니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25일 STX조선에 백기를 들면서 법정관리를 선언했다. STX조선에 6조원을 쏟아부은 것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산업은행, 수출입은행만 4조원이 물렸다. 모두 국민 세금이다.

산업은행은 2013년 STX조선 자율협약을 추진했다. 법정관리로 가서 빚잔치하는 것보다 지속 가능한 영업을 할 수 있도록 자율협약을 선택했다.

그리고 신규 자금을 쏟아부었다. 산업은행은 지역경제, 고용효과, 국가 기간산업이라는 온갖 명분을 만들어 STX조선을 지원했다. 정상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틈틈이 내보였다. 그러던 산업은행이 손을 놓았다. 3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조선, 해운업이 급격히 안 좋아졌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조선, 해운업은 그 전부터 상황이 안 좋았다. 성동조선, SPP는 STX조선보다 먼저 채권단의 지배를 받았다. 이제 화살은 산업은행의 구조조정 능력을 정조준하고 있다.

채권단 내에서도 STX조선이 살기 위해 저가수주를 했고 산업은행이 이를 용인해줬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산업은행은 저가수주한 물량을 대부분 계약 해지했다고 밝혔지만 채권단이나 업계는 믿지 않는 분위기다. 결백함을 증명하려면 호선별 원가표를 공개하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저가수주를 했는지는 원가표만 보면 알 수 있다. 일부 채권단은 STX조선을 살리기 위해 저가수주로 중소 조선사들의 생태계를 오히려 교란했다는 지적도 한다. 또 오히려 익스포저가 더 늘었다고 말한다. 조선업 익스포저를 볼 때는 확정 선수금환급보증(RG), 미확정 RG, 일반대출, 미수금 등을 나눠서 봐야 한다. 철저하게 이 부분도 공개해야 산업은행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산업은행은 스스로 채권자 입장이 아니라 은행 등 채권자와 금융당국, 기재부, 정치권 등의 중간조율자 역할을 하다보니 이도 저도 아닌 구조조정이 되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정도의 기업 구조조정 능력이라면 2013년 STX조선을 법정관리로 보내 손실을 줄이는 게 현명한 판단일 수도 있었다.
산업은행이 억울한 누명(?)을 벗기 위해서는 지난 3년 동안 STX조선을 어떻게 관리했는지 모든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pride@fnnews.com 이병철 금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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