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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의료계 직능 갈등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5.27 18:10

수정 2016.05.27 18:10

[여의도에서] 의료계 직능 갈등

춘추전국시대 중국 북쪽 변방의 연나라는 남쪽 산둥반도에 있는 제나라 땅을 탐하느라 자체 방어가 허술했다. 이를 틈타 오히려 서쪽의 조나라가 연나라를 노렸다. 다급해진 연나라는 소대라는 사람을 조나라 혜문왕에게 외교특사로 보냈고 소대는 조나라 혜문왕을 만나 이런 얘기를 했다. 이곳에 오는 길에 역수를 지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입을 열고 있는 조개를 보았다. 그때 마침 조개를 본 황새가 조갯살을 먹으려 부리를 조개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러자 조개가 입을 다물어버렸다.
둘이 싸우는 모습을 본 어부가 둘을 잡아갔다. 이처럼 연나라와 조나라가 싸우면 두 나라는 힘이 빠지게 되고 이 틈을 타고 옆의 진나라가 두나라를 함락할 것이다.

이는 중국의 고사성어 '어부지리(漁父之利)'에 대한 내용이다.

요즘 의료계에서 빚어지고 있는 업역갈등이 꼭 그짝이다. 의료계의 맏형인 대한의사협회와 치과, 한의사, 약사, 간호사 간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가장 최근에는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치과의사협회가 '보톡스 시술' 허용 여부를 놓고 한 판 붙었다. 지난 19일 대법원에서 '치과의사 보톡스 시술 적법 여부'를 둘러싼 공개변론이 열렸다.

의사협회는 "치과의사의 역할이 치아와 구강에 국한돼 있으므로 치과 의사의 보톡스 시술행위는 당연히 의료법 위반이며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치과의사협회는 "치과의사는 씹는 역할에 지장이 있으면 치료해야 하는데 씹는 근육은 관자놀이 부근과 입을 벌릴 때 목 부근의 근육도 작용하기 때문에 보톡스 사용에 문제가 없다"고 반박한다.

의사협회는 보톡스를 치과 의사가 아예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치과의사협회는 목적에 따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사협회는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놓고는 한의사협회와 대결을 벌이고 있다. 한의사협회는 초음파나 X레이 기기를 사용해 진단이나 사후 점검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의사협회는 전통의학을 하는 한의사들이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의사협회 입장에서 보면 한마디로 '사면초가'다. 과거에도 의약분업 등을 두고 첨예한 갈등이 빚어지긴 했지만 요즘처럼 전방위적 공격을 받은 적은 없다. 이는 의료환경이 예전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각 직역에서는 새로운 먹거리 창출을 위해 영역을 확장하면서 타 직역을 침범하고 있는 게 주된 이유다. 여기에 정보기술 등을 앞세운 새로운 시술이나 치료법의 등장은 기존 영역을 무너뜨리는 형국이다.

융복합 시대다. 융복합은 곧 영역 파괴를 의미한다.

이런 흐름은 의료계도 피할 수 없다. 날로 급변하는 산업환경에서 기득권만 고집하다가는 도태될 뿐이다.
의사협회, 더 나아가 의료계 전체가 눈앞의 이익에만 매달려 진흙탕 싸움을 벌이다가는 공멸할 수밖에 없다. 어부에게 희생을 당하지 않으려면 세상을 제대로 바라봐야 한다.
그 눈높이는 바로 환자다.

정 명 진 생활경제부 차장 의학전문기자 pompom@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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