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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미국과 유럽연합 FTA, 물 건너 간다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5.30 17:08

수정 2016.05.30 17:30

[fn논단] 미국과 유럽연합 FTA, 물 건너 간다

지난달 25일 독일 북부의 하노버. 해마다 열리는 산업박람회장에서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유럽의 주요 4개국 지도자들을 만났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초청으로 방문한 그는 영국의 캐머런 총리, 프랑스의 올랑드 대통령, 이탈리아의 렌치 총리를 한자리에서 만나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자유무역협정(FTA)인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을 올해 안에 매듭짓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미국은 올 11월 대통령선거가 있고 프랑스에서는 내년 봄에 대선, 독일에선 내년 9월에 총선이 예정돼 있다. 이미 선거 사이클에 접어든 데다 미국과 유럽 각국에서 FTA 반발 기류가 심상치 않다.

공화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는 물론이고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유력 후보조차 FTA에 반대한다.
힐러리는 국무장관 재직 시에 지지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지난해 10월 타결)을 비판했다. 다분히 노조를 의식한, 표를 잃지 않으려는 셈법이다.

유럽은 상황이 더 꼬였다. 2010년 그리스 경제위기 때부터 시작된 EU 회원국들의 경기 하강세가 올해 들어 다소 상승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긴축에 지친 유럽의 유권자들은 그리스뿐만 아니라 스페인과 프랑스 등에서 극좌와 극우의 포퓰리스트 정당을 지지하게 되었다. 프랑스의 극우 민족전선(FN), 스페인의 좌파 포데모스 등은 FTA를 반대한다. 경제상황이 괜찮았던 독일에서조차 절반 이상의 시민들이 미국과의 FTA를 반대한다.

협상 과정에서 사실상 EU도 기존의 투자자국가소송제(ISD)를 배제하려 했다. 유럽은 이 제도가 지나치게 미국에 유리한 것이라며 새로운 전담 국제법원의 설립과 항소법원 설치를 제안했으나 미국은 거부했다. 또 서비스무역의 경우 프랑스는 문화콘텐츠 상품을 서비스교역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해 아직까지 해결이 되지 않았다.

미·EU FTA는 2013년 6월 공식협상이 시작돼 벌써 13차례 협상을 가졌다. 원래 2년 안에 협상타결을 목표로 했으나 벌써 3년이 지나간다. 양자는 상호 최대 교역상대국으로 지난해 상품과 서비스교역 총량이 1조1000억달러로 우리 경제규모의 80%다. 원래 양자의 FTA 협상은 서비스상품 시장 개방과 규제 조화에 방점을 두었다. 미국과 EU의 국내총생산(GDP)을 합치면 세계 총생산의 40%가 조금 넘고, 세계 무역의 3분의 1 정도다. 양자가 FTA에 합의하면 이게 글로벌 스탠더드가 되어 중국도 이를 수용하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의 한 고위관리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오바마 임기 내에 TTIP를 체결하지 못하면 2021년 돼서야 가능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2017년 미국에 신행정부가 들어서면 집권 초기부터 FTA에 주력하지 않을 게 뻔하다.


야심찬 계획을 갖고 출발한 미국과 EU의 FTA 협상은 이제 리더십 부족이 무슨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가 되었다.

안병억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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