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보험

[나는 대한민국 OOO입니다(38)] 보험사 손해사정인 "욕설·협박에도 그저 죄송합니다"

홍창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5.30 17:36

수정 2016.05.30 22:25

"교통사고 현장의 '죄인'이죠"
사고 조사하고 피해 산정, 교통사고 도우미 역할 불구
욕설에 보험금 분쟁 빈번.. 고객과 마찰 끊이지 않아
고맙다는 고객 말 한마디에 "이 직업 잘 택했다" 보람도
#. 오늘은 얼마 전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피해자의 장례식장으로 출근을 했습니다. 피해자 가족이 저에게 다짜고짜 욕을 합니다. "지금 사람이 죽었는데 돈 얘기부터 하느냐"면서 "당장 가해자 여기로 데리고 와"라며 큰소리를 칩니다. 어제 오전 내내 제가 한 말은 "무조건 죄송합니다"였습니다. 마음이 무겁고 아픕니다. 하지만 이 자리를 오늘 저는 떠날 수가 없습니다.
피해자에게 보상절차를 설명하고 가해자를 대신해서 피해자를 납득시키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 얼마 전에는 사무실로 한 통의 협박전화가 왔습니다. 소위 말하는 '어깨'들의 전화였습니다. 이미 처리가 끝난 경미한 교통사고 때문이었습니다. 그 어깨는 나에게 "자신의 보험금이 왜 이것밖에 되지 않느냐"며 밤길 조심하라고 말했습니다. 이 어깨는 전에도 사무실로 칼을 들고 찾아와 사무실을 난장판으로 만든 적이 있습니다. 저도 사람이라서 사실 무서웠습니다. 그럼에도 그 어깨에게 보험금이 그렇게 집행된 이유를 설명해줬습니다.

[나는 대한민국 OOO입니다(38)] 보험사 손해사정인 "욕설·협박에도 그저 죄송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우리들을 보상직원이라고 부릅니다. 또는 보험사고처리반이나 보험사고조사인, 보험사고해결사라고도 얘기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보험사고가 발생하면 그 사고를 조사하고 그 손해액을 산정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일을 쉽게 이야기하면 이렇지만 사실 우리는 전문직입니다. 우리는 보험사고가 발생하면 손해발생 사실을 확인하고 보험약관 및 관련 법규를 적용함에 있어서 적절한지를 판단하고 손해액과 보험금을 산정, 계산하는 업무를 하는 전문자격인입니다. 네, 맞습니다. 나는 대한민국 손해사정사입니다.

■욕설과 협박이 일상이 된 일과

손해사정사보다는 보상직원, 보험사고처리반, 보험사고조사인, 보험사고해결사라는 명칭이 친숙하기는 합니다만 사실 손해사정사가 맞는 표현입니다.

저희의 일과는 늘 보험사고 현장에서 시작되고 끝납니다. 저희가 가장 많이 시간을 할애하는 교통사고 현장은 물론, 실손보험까지 저희의 손이 필요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하지만 고객들과 마찰은 끊이질 않습니다. 저희가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보험금의 규모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보험회사에 소속된 손해사정사의 경우 손해액 산정 후 보험금을 지급하는 업무를 하다 보니 피보험자 또는 피해자 측과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이 벌어집니다. 피해자 측에서는 너무나 억울하고 분통이 터지지만 막상 배상책임보험이나 상해보험 등의 잣대를 들이대면 보험금이 줄어드는 일도 허다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현장에서 욕도 많이 먹습니다. 보험금의 차이로 인한 분쟁이 발생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도 이럴 때면 힘이 쭉 빠집니다. 최선을 다해 일을 했지만 피해자에게 돌아오는 첫마디가 욕일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정확한 조사, 진심 어린 위로 필수

그럼에도 피해자의 손해 정도를 파악하기 전에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괜찮으세요'라고 묻는 것이 손해사정사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덕목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온정주의에만 매달려 할 일을 등한시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 들어 보험범죄가 늘어나는 데다 블랙컨슈머가 늘어나면서 분쟁을 고의로 만드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만큼 원리원칙대로 일을 처리해야 합니다. 하지만 피해자에 대한 따뜻함은 언제나 유지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가장 많이 하는 첫마디는 "괜찮으세요"입니다.

가끔 피해자 분들이 "고맙다"는 감사의 말을 전달해주면 손해사정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기를 잘했구나 하는 보람을 느끼기도 합니다.

■전문지식 반드시 필요한 직업

각종 사고 현장에서 우리를 접하는 분들이 많다 보니 손해사정사가 되는 일이 쉬울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만 손해사정사가 되기는 그렇게 만만치 않습니다. 손해사정사 업무를 하기 위해서는 금융감독원에서 실시(제23회 손해사정사 시험부터는 보험개발원이 위탁받아 수행)하는 1차 및 2차 시험에 합격하고 일정기간의 수습을 한 후 금융감독원에 등록해 자격을 취득해야 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유능한 손해사정사가 되기 위해서는 각종 지식 습득도 필수입니다. 손해사정사는 배상책임보험, 상해보험, 재물보험 등을 취급하기에 각종 법률지식 및 약관해석 등에 필요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또 교통사고 등 각종 사고조사에 필요한 조사기법까지 두루 겸비해야 뒤탈이 없습니다.

■손해사정업의 미래는

현재 손해사정업 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합니다. 일부에서는 손해사정사의 역할을 축소하려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제3보험 상품의 손해사정사 고용 또는 위탁 의무가 불필요한 규제에 해당한다는 목소리가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본격적으로 고령화사회에 진입하고 있어 보험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손해사정사의 미래가 그렇게 비관적이지만은 않다고 확신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욕을 먹겠지만 나는 현장에 나갑니다. 사고 피해자들에게 진심 어린 정신적인 위로와 원만한 보상처리를 하러 말입니다.
나는 대한민국 손해사정사입니다.

ck7024@fnnews.com 홍창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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