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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회계투명성이 곧 기업의 자산

윤경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5.31 17:30

수정 2016.05.31 17:30

[차장칼럼] 회계투명성이 곧 기업의 자산

얼마 전 회계학과 교수들을 만난 자리에서 "기업 스스로 돈이 더 들더라도 좋은 회계감사를 쓰겠다는 회사가 있을까"라고 물었다. A 교수는 "단언컨대 자발적으로 나서는 곳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B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딱 하나 있다. 현대카드"라고 답했다.

현대카드가 지난해 회계감사에 지불한 보수는 9억원이다. 총 소요시간이 1만74시간이었으니 시간당 9만원에서 조금 빠지는 액수다.
지난 2013년 2억2000만원(1910시간)과 비교해 감사보수는 3배, 감사시간은 4배가 각각 늘어났다.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은 "감사를 투명하게 받으려면 적정한 감사보수를 제공하는 게 맞다"고 말한 바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부실감사 논란이 불거지기 전인 2014년 5억4600만원을 감사보수로 지출했는데 투입시간은 6215시간에 그쳤다.

미국에서 시작된 회계감사제도는 경영자와 주주 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만들어졌다. 서로 믿음이 부족한 부분을 제3자를 통해 해결하자는 의도였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는 대주주가 경영하는 경우가 많다. 경영자와 대주주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정작 회계정보가 필요한 소액주주들은 회계감사를 선정하는 이사회나 감사위원회에서 철저하게 배제돼 있다.

외부감사인도 사람이다. 누가 나한테 돈을 주는지가 중요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돈을 주는 사람의 목에 칼을 들이댈 수는 없는 법이다. 당연히 회계감사도 돈을 주는 기업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일도 있다. 회계사가 회사 측에 필요한 자료를 요구했다. 그러나 해당 기업 회계부서에서는 "지난해에는 이딴 거 없었어도 잘 했잖아요. 재계약 안 할 거예요?"라는 핀잔만 되돌아왔다.

기업이 최종 산출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또 어느 회계법인이 하든 감사의견에 대한 차별성도 느끼지 못한다.

이는 감사보수를 단순한 규제비용으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회계투명성을 확보해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투자 개념으로 이해하느냐 하는 차이다.

글로벌 기업과 국내기업의 감사보수 격차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난 2012년을 기준으로 국민은행의 감사보수는 20억원, 호주 맥쿼리은행은 93억원이었다. 같은 해 제너럴모터스(GM)의 감사보수는 무려 450억원을 넘었다.

문제는 회계감사의 실패는 해당 기업의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칫 시장 붕괴를 불러올 수도 있고, 막대한 국민 혈세가 들어가는 수도 있다. 실패에 대한 비용을 사회가 공유하는 것이다.


감사보수를 올리는 것이 '부실한' 회계감사를 없앨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아니다. 회계업계의 요구대로 감사보수를 올리기 위해서는 모두가 인정할 수 있을 만큼 회계 품질을 높이고, 엄격한 품질관리와 함께 품질평가 결과를 공개하고 회계감사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는 조치가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1급수'처럼 맑고 깨끗한 투명성이 기업의 큰 '자산'이라는 인식의 대전환이다.

blue73@fnnews.com 윤경현 증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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