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미국을 무너뜨리는 '계층 전쟁'

미국은 지금 전쟁 중이다.

중동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테러범들과 싸우고 있고 멕시코 등 남미에서 침투하는 마약범들과도 싸우고 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이 치르고 있는 가장 중요한 전쟁은 '계층(class)' 간의 갈등으로 빚어지고 있는 내전이다. 일반 근로자들의 임금정체 및 물가상승 등으로 인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면서 미국 사회는 '계층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퓨리서치센터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중산층 인구는 1971년 전체 인구의 61%를 차지했지만 지난해에는 그 비중이 49.9%로 크게 줄었다. 퓨리서치센터가 규정하는 중산층이란 3인 기준으로 소득 범위가 연 4만1900달러(약 4970만원)~12만5600달러(약 1억4900만원)에 해당되는 가구들이다. 이 기준을 밑돌면 저소득층, 넘으면 고소득층으로 분류된다.

여기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중산층에 속한 성인은 약 1억208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50% 아래로 떨어졌다. 미국에서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후 중산층 인구 비중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었다. 반면 1971년에 비해 저소득층은 29%로 4%포인트 늘었고 고소득층은 21%로 7%포인트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중산층의 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인 미국은 이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돈을 벌려면 돈이 있는 곳으로 눈길을 주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산층은 더더욱 뒷전으로 밀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의 상위 5% 부자들은 2009~2012년 소비를 17% 늘렸지만 나머지 95%는 1% 증가하는 데 그쳤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고급 브랜드와 상점들은 고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지만 중산층을 타깃으로 삼은 기업들은 마이너스 성장에 허덕이고 있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NYT)에서 "특권의 시대, 모두가 같은 배에 타지 못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접한 바 있다. 이 기사는 부자들을 겨냥한 대형 크루즈 선박회사들의 마케팅과 특권 혜택 부여 등을 언급하면서 "기업들이 돈에 기반한 일종의 카스트 제도를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한 크루즈 선박은 일반 여행비용의 3배가 넘는 액수를 지불하는 여행객들에게 그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전용 수영장과 식당을 제공하고 있다. 말 그대로 '같은 배를 탔으면서도 현실은 완전히 다른 배를 타는 격'이다.

세계 평화와 단합을 강조하는 'It's a Small World'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유명한 디즈니월드도 돈 앞에서는 차별대우를 서슴지 않는다. 기사에 따르면 디즈니월드는 올해부터 폐장 후 특별 손님을 위한 서비스를 시작했다. 돈만 있으면 '나만의 매직 킹덤'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NYT는 "루스벨트 대통령 이래 한 세기 만에 소득불평등이 심해지고 경제적 격차가 극도로 벌어졌다"며 "타이타닉호가 다닐 때처럼 계층이 엄격히 분리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요즘 미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의 유력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의 유세 현장에서 자주 발생하고 있는 폭력사태가 '계층 전쟁'의 좋은 예다. 정치적 이념의 차이, 인종차별에서 빚어진 갈등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트럼프의 유세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폭력사태의 가장 큰 원인은 '돈' 때문이다. 당장 생활이 힘드니 그 화살이 죄 없는 이민자들과 유색인종으로 향하면서 반이민 정책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는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을 반으로 갈라놓은 '남북전쟁'의 원인은 '노예제도'를 둘러싼 갈등 때문이라고 역사 교과서는 가르치고 있지만 실제 이유는 통상과 무역과 관련된 '돈'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에이브러햄 링컨이라는 거인이 분열된 나라를 위기에서 구했지만 지금 미 국민들에게 있어 선택의 여지는 "트럼프냐, 힐러리냐"에 국한돼 있으니 참으로 한심할 지경이다.

누가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될지는 몰라도 부자들의 세금은 줄어드는 중산층 때문에 앞으로 꽤 오를 것 같다.

정지원 뉴욕 특파원 jjung72@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