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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칼럼] 로이 최도 한국선 별 수 없다

이재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6.08 16:36

수정 2016.06.08 16:36

푸드트럭 합법화 2년 넘었지만 지자체는 여전히 영업지역 제한
'규제개혁 상징' 타이틀이 무색
[이재훈 칼럼] 로이 최도 한국선 별 수 없다

영화 '아메리칸 셰프'의 실제 모델이자 '푸드트럭의 전설'로 통하는 한국계 미국인 로이 최가 얼마 전 시시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016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렸다. "한낱 푸드트럭 사장에게 '요리 개척자'라니" 하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타임은 "로이 최가 새로운 콘셉트로 푸드트럭의 이미지를 향상시켰고, 돈 들이지 않고 창업에 성공할 수 있는 모델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로이 최는 2008년 로스앤젤레스 지역에서 '고기(Kogi)'란 이름의 푸드트럭을 끌고 다니며 한식에 멕시코 음식을 접목한 2달러짜리 불고기 타코로 돌풍을 일으켰다. 세계적인 요리학교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출신으로 유명 호텔.레스토랑 셰프를 거친 그는 '싸구려 길거리 음식'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버렸다. 고기트럭의 사업 첫해 매출만 200만달러(약 23억원)에 달할 정도였다.
그의 성공을 보고 실력파 셰프들이 속속 푸드트럭 사업에 뛰어들어 외식문화 자체를 바꿔나갔다.

로이 최의 성공에 관심이 가는 것은 우리에게 푸드트럭의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2014년 3월 박근혜 대통령은 정부부처 장관, 민간 대표들과 함께 장장 7시간 동안 규제개혁을 주제로 '끝장토론'을 벌인 끝에 푸드트럭 합법화를 규제개혁의 1호 과제로 지목했다. 정부는 푸드트럭 합법화로 6000여명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예상된다며 홍보에 열을 올렸다. 그렇게 푸드트럭은 규제개혁의 상징이자 청년 일자리의 보고(寶庫)가 됐다.

그로부터 2년 넘게 지난 현재 푸드트럭은 어떻게 됐나. 이 땅에 '제2의 로이 최'가 나타날 수 있을까. 아니, 로이 최가 한국에서 사업을 한다면 성공할 수가 있을까. 안타깝게도 현재로선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로이 최도 이대로면 망하기 십상이다. 규제완화가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다. 4월 말 현재 전국에서 허가받은 푸드트럭은 184대뿐이다. 반면 '불법' 푸드트럭은 2000여대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법 테두리 안에서 사업하기가 힘들다는 점을 시사한다.

푸드트럭에 달린 족쇄는 크게 봐서 두 가지다. 영업지역 규제와 트럭 규격 규제다. 푸드트럭의 강점은 기동성이다. 그러나 사람이 붐비는 도심에선 영업을 할 수 없다. 지방자치단체가 정해주는 영업지역은 유원지, 공원, 체육시설 등인데 인적이 뜸하다. 거기서도 목 좋은 곳은 기존 상인들이 자리잡고 있다. 지자체 공무원들은 기존 상인들의 반발을 핑계로 웬만해서는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게다가 지금까지는 영업장소를 옮기는 것도 금지했다. 이래서는 푸드트럭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전국 1호 허가를 받았던 충북 제천 의림지의 푸드트럭이 영업 6개월 만에 폐업한 것도 장사가 안 돼서였다. 미국의 경우 푸드트럭의 위생에 대해서는 규제가 깐깐하다. 다만 주변 음식점과의 거리 제한 등을 빼면 영업지역 규제는 느슨한 편이다.

비난 여론이 일자 행정자치부는 최근 푸드트럭들이 지자체가 지정한 '푸드트럭 존'을 시간대별로 이동하며 영업할 수 있게 한다고 발표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이동영업에 따르는 신고절차를 간소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푸드트럭 존'을 지정할 지자체가 적극성을 띨지 믿기가 어렵다. 도심지를 과감하게 지정할지 미심쩍다. 우리는 공무원의 끈질긴 '규제 본능'을 지난 2년간 익히 봐왔다.

현재 푸드트럭으로 개조가 가능한 차량은 0.5t과 1t뿐이다. 비좁아서 맛있고 다양한 음식을 조리할 수가 없다. 로이 최도 이런 공간에서는 불고기 타코를 제대로 만들 수 없다. 개조를 더 과감히 허용해야 한다. 합법적 푸드트럭을 보호하기 위해 불법 노점상을 단속해야 하지만 지자체들은 속수무책이다.
푸드트럭 사업자들이 '불법'의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다.

우리 푸드트럭이 신나게 달릴 수 있도록 족쇄를 한방에 부숴버려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박근혜정부의 '푸드트럭'도 이명박정부의 '규제전봇대'처럼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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