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특별수사'로 돌아온 연기 21년차 배우 김명민
"나태함은 연기하는데 毒"
"나태함은 연기하는데 毒"
"육체적으로 너무 힘든 장면을 찍고 나니 만감이 교차했다. 감독과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더라."(웃음)
낮은 바리톤에 연극 무대에서 다져진 듯한 딱 떨어지는 발음. 한없이 묵직할 것만 같았던 배우 김명민(사진)의 이미지가 사정없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김명민은 영화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16일 개봉)에서 맡은 안하무인에 속물 법률사무소 사무장 최필재 만큼 능글맞고, 시종일관 유쾌했다.
"실망이 크기 때문에 기대를 원래 잘 안한다. 그런데 기대를 안해서인지 (영화가) 생각보다 잘 나왔더라"고 눙치는가 하면, 흥행 정도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딱 그 정도"라며 유쾌하게 답을 피해가기도 했다.
메소드 연기의 대가답게 어쩌면 그는 최필재에게서 채 벗어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불멸의 이순신'(2004년)의 이순신 장군, '하얀 거탑'(2007년)의 천재 외과의사 장준혁, '베토벤 바이러스'(2008년)의 괴짜 마에스트로 강마에, '내사랑 내곁에'(2009년)의 루게릭 환자 백종우, 최근 '육룡이 나르샤'(2015년)의 정도전까지. 매 작품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몰입하는 것으로 유명하니까 말이다. 비록 이번 역할에는 "종아리까지만 담갔다"는 그지만, 그의 연기 철학은 뚜렷했다. "역할을 맡을 때 기본적으로 그 인물의 삶을 전체적으로 상상한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나오는 분량은 어느 특정 시점, 1년이나 한 달, 짧게는 하루만에 벌어지는 일들이지만, 그 시점 전후 삶을 모른채 연기하는 것은 모순이다. 캐릭터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알고 연기를 하는 것과, 그 순간만을 연기하는 것은 다르다는 믿음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도 확고했다. "내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그런 영화는 이상하게 손이 안간다. 유명 감독에 빵빵한 배급사, 쟁쟁한 출연진 등 누가 봐도 (흥행)보증수표라도 뒤로 미루게 된다"고 털어놨다.
"여러가지 조건이 미지수지만, 나를 너무 필요로 하고 (내가) 할 꺼리가 많은 작품. 이거 하면 고될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중요시하는 편이다. 하고 나서 결과까지 좋다면 더할나위 없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게 다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기 21년차를 맞은 것에 대해서도 자랑스럽다기 보다는 "(연륜을) 잊는 게 좋다"며 스스로의 나태함을 경계했다. 그는 "연기라는 것이 삶을 담아내는 것이니 결혼, 출산 등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지만 나머지는 아니다"라며 "어딜가도 이제는 대부분 후배고, 주변에서 대우를 해주다 보면 안주하게 된다. 결국 나태함은 독(毒)"이라고 잘라 말했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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