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산은 민영화가 답이다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6.13 16:58

수정 2016.06.13 16:58

박근혜정부의 백지화 결정은 시계추 거꾸로 돌린 오류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곽인찬 칼럼] 산은 민영화가 답이다

홍기택 전 KDB산업은행 회장이 입을 열었다. 그는 최근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산업은행은 들러리 역할만 했다"고 주장했다. 작년 가을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지원은 청와대.기획재정부.금융당국이 결정했다는 것이다. 청와대 서별관회의를 물고 늘어진 걸 보면 맘을 단단히 먹은 것 같다. 홍기택의 작심 발언은 권력에 맞선 을(乙)의 반란이다. 은근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홍기택의 말은 신빙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3년 전 그는 낙하산을 타고 산은에 착륙했다. 그런데 학자 때 쓴 신문 칼럼이 발목을 잡았다. 2008년 8월 중앙대 교수 시절 그는 '산은 IB 육성 성공하려면'이라는 글을 썼다. IB는 투자은행의 약자다. "산은 민영화는 낙후된 우리 금융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는 게 골자다.

이를 어쩌나. 임명권자인 박근혜 대통령은 산은 민영화에 급브레이크를 걸었다. 학자로서의 소신과 국정철학이 충돌했다. 그러자 그는 기꺼이 후자를 택했다. 당시 홍기택은 기자들을 불러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가 나빠지면서 민영화 여건이 악화되고 정책금융의 필요성이 확대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가 인수위 출신이라 누구보다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잘 이해한다"고 강조했다.

홍 전 회장의 '들러리' 발언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먼저 자기반성이 있어야 했다. 3년 전 민영화 소신을 걷어찬 것은 자리 욕심 때문이었다는 고백 말이다. 이런 반성 없이 정권의 수혜자가 같은 편 사람들을 헐뜯으니 난파선 탈출 이야기가 나오는 거다. 지금도 그는 중국 베이징에 본부를 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서 한국 몫 부총재를 맡고 있다. 민영화 백지화가 오류였다는 양심선언이 나오지 않는 한 홍기택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 힘들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뒤늦게 "대우조선 지원은 협의를 거쳐 이뤄졌다"는 해명자료를 뿌렸다.

그에 비하면 '진영욱의 반란'은 진정성이 느껴진다. 지난 2013년 8월 당시 정책금융공사(정금공) 사장이던 진영욱은 민영화를 폐기하려는 정부 방침에 반대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공공기관장이, 그것도 현직에서 반기를 들기는 쉽지 않다. 그는 산업은행과 정금공을 재통합하려는 정부 개편안에 대해 "우리 경제와 금융산업 발전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와닿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괘씸죄에 걸린 진영욱은 임기를 열달 남기고 물러났다. 그가 쫓겨난 뒤 산은과 정금공은 '순조로운' 통합 절차를 밟았다. 그 합체물이 바로 현 KDB산업은행이다.

진영욱은 선견지명이 있었다. 그는 "산은은 해외로 나갈 수 있는 우리나라 대표 은행인데 정부가 시키는 것만 하라고 만드는 결과가 될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지금 우리는 산은이 정부 지시만 고분고분 따른 결과를 똑똑히 보고 있다. 산은은 부실기업 종합처리센터로 전락했다. 국책은행의 맏형이라는 체통은 쓰레기통에 처박힌 지 오래다.

현 정부 관료들은 입만 열면 시장 중심, 채권단 중심 구조조정을 되뇐다. 그러면서도 틈만 나면 구조조정에 끼어들지 못해 안달이다. 얼마 전 정부와 한국은행은 국책은행 자본 확충용으로 12조원을 마련하기로 했다. 여차하면 산은과 수출입은행을 통해 좀비기업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관료.정치인들은 '구조조정'이라 쓰고 '퍼주기'라 읽는다. 이래선 국책은행의 동반 부실화를 막을 수 없다.

산은의 명성을 되찾을 묘책은 없을까. 민영화가 답이다. 임자가 나타나면 정부가 함부로 끼어들 수 없다. 개별 부실기업의 명줄은 시장에 맡겨라. 정부는 나라 경제를 통째로 흔드는 시스템 리스크만 유의하면 된다. 정 불안하면 산은 대신 정책금융을 전담할 정금공을 부활시키면 된다.
산은 민영화 백지화는 시계추를 거꾸로 돌린, 심각한 정책 오류다. 3년 전 진영욱은 "통합 산은이 나중에 또 갈라질 수 있다"고 예견했다.
산은을 놓아주자. 그래야 산은이 산다. 시어미 무서워 찍소리 못하는 '들러리' 산은이 불쌍하지도 않은가.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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