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주영 칼럼]

구조조정 철칙은 속전속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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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자금 투입은 특공대, 작전 적진에 오래 머물수록 살아 돌아올 확률 낮아져

시장 바닥에 돈다발이 널려 있다면 줍지 않을 사람은 드물 것이다. 사기업 영역에 들어간 공적자금도 마찬가지다. 주인 없는 돈이어서 먼저 본 사람이 줍게 돼 있다.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생리가 그렇다.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결과를 보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대우조선은 총체적 부패공화국이었다. 경영진은 적자를 흑자로 둔갑시켜 2000억원대의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청와대와 정치권, 관계, 산업은행 등은 조선업과 무관한 사람들을 낙하산으로 내려 보냈다. 고문과 자문역들이 왜 그리도 많이 필요했을까. 전직 대통령 사진사가 경영자문역으로 내려올 정도였으니 한마디로 낙하산 천국이었다. 차장급 직원 한 사람이 2700여차례에 걸쳐 회삿돈 180억원을 빼돌렸는데도 회사는 이런 사실을 8년 동안이나 몰랐다. 더 이상한 쪽은 산은이다. 대우조선은 1조5000억원대의 영업이익을 부풀려 적자를 흑자로 꾸몄다. 산은은 이런 회계비리를 파악해낼 수 있는 시스템을 갖고 있었지만 가동하지 않았다. 회계 감시를 못한 것이 아니라 안한 것이다.

정부는 어떤가. 지난해 10월 청와대 서별관에서 회의가 열렸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을 동원해 4조2000억원의 구제금융을 지원하기로 했다. 지난 4월 말에 서별관회의가 다시 열렸다. 한국은행의 지원을 받아 12조원을 더 끌어왔다. 이 돈으로 국책은행의 자본을 보강해 대우조선을 비롯한 몇몇 기업의 부실을 메꿔주기로 했다. 부실기업에 세금을 지원해 부실을 키우고 그 부실을 메꾸기 위해 다시 더 많은 세금을 투입하고 있다. 구조조정을 한다는 미명 하에 살아날 가망이 희박한 좀비기업을 연명시키는 것이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에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고 그 과정에서 각종 부패와 부조리가 만연되고 있다. 그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방법은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것이다. 정부와 국민들이 거대기업의 도산을 참고 견녀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말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하청업체를 포함하면 수만명의 일자리와 수십만 주민들의 삶의 터전인 지역경제가 걸려 있는데 정부더러 구경만 하고 있으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또한 대우조선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함을 인정하고 해법을 찾는 것이 현실적인 접근법일 것이다.

공적자금이 사기업의 영역에 구원투수로 들어갈 때는 철칙이 있다. 가능한 빨리 문제를 해결하고 빠져 나와야 한다. 속전속결이다. 왜냐하면 사기업의 영역이 공적자금에는 위험지대이기 때문이다. 부실기업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일은 적진 깊숙이 특공대를 보내 아군 포로들을 빼내오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적진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살아 돌아올 확률은 낮아진다. 사기업의 영역에 투입된 공적자금은 시장 바닥에 주인 없이 굴러다니는 돈다발과 같다. 오래 두면 둘수록 사람과 조직을 부패하게 한다. 대우조선 부실화는 주인 없는 회사를 위험지대에 오래 방치하면 어떤 결과가 오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대우조선은 물론이고 산은까지 함께 망할 처지가 됐다.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정부의 책임이 무겁다.

대우조선의 구조조정에 세금을 투입하는 것이 불가피하지만 세금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최선의 방책은 기업부실로 국고를 축내면 누구든 무사할 수 없다는 원칙을 세우는 것이다. 이 원칙이 살아있다면 부실의 확대재생산을 상당부분 억제할 수 있다. 검찰이 대우조선 부패 혐의에 대한 수사에 나선 것도 이런 원칙의 연장선일 것이다.
세금에 손 대느니 차라리 망하는 게 낫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가 돼야 한다.

주인 없는 돈다발이 시장 바닥에 너무 오래 굴러 다녔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즐겼다. 청와대와 정치권, 산은, 회사의 경영진과 직원들, 거래기업과 하청업체들, 심지어 회계법인까지. 산은 소유 16년에 안 망할 기업이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 아닐까.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