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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칼럼] 정치가 망친 신공항

이재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6.22 16:54

수정 2016.06.22 16:54

가덕도·밀양 찍고 원점 회귀.. "김해 안된다더니" 어안이 벙벙
확장공사나 제대로 했으면
[이재훈 칼럼] 정치가 망친 신공항

영남권(동남권)신공항 문제가 돌고 돌아 원점으로 회귀했다. 밀양도, 가덕도도 아닌 김해공항 확장이다. 영남권 신공항의 입지로 밀양.가덕도 등이 검토된 것은 10년 전부터다. 그동안 김해공항의 협소함과 안전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검토가 국토교통부, 부산시 등에서 이뤄졌다. 그때마다 안전성, 소음피해, 공간적 제약, 보상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실효성이 의문시됐다. 그런데 이제 와서 김해공항 확장이 최고의 방안이라니 모두 '어안이 벙벙(유승민 새누리당 의원)'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정부가 김해공항 확장을 선택한 배경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최악의 국론분열은 피했다"는 청와대 관계자의 평가로 알 수 있다. 지역갈등과 분열이 극단으로 치닫고 탈락 지역의 민심 이반이 심각해지면 현 정부와 집권여당은 감당이 안 된다. 더군다나 내년엔 대통령 선거가 있다. 차선책이자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것이 김해공항 확장이다. 하지만 이명박정부가 백지화했던 영남권 신공항을 되살려낸 당사자가 박 대통령이다. 공약파기 논란이 일 수밖에 없다. 대구.경북(TK)이나 부산.경남(PK)쪽 반응은 격했다. "국민을 우롱하는 사기극" "김해공항의 한계 때문에 신공항을 하자는 건데 다시 김해공항이라니…."라는 식이다.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을 신념으로 삼고 있는 박 대통령으로선 공약파기 논란이 큰 부담이다. 정부는 "영남권 신공항이 백지화된 것이 아니라 김해공항이 신공항이 된 것"이라며 논란을 정면 돌파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에선 박 대통령이 대선 당시 특정지역에 신공항을 두겠다 하지 않았고, 김해에 신공항을 만든다는 의미에서 공약을 실천한 것이라는 논리를 펴는 모양이다. 전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지만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궤변이라고 본다.

박근혜 대통령 후보는 2012년 11월 부산 민심이 들썩인다는 말이 돌자 부산을 방문, "공정하고 투명한 평가를 통해 가덕도가 최고의 입지라고 한다면 신공항은 당연히 가덕도로 할 것"이라고 달랬다. 알쏭달쏭한 표현이지만 부산 시민들은 가덕도에 신공항을 두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이런 게 정치인의 화법이다. 이제 와서 "입지와 관련한 약속은 하지 않았다"고 하면 배신감이 들지 않겠나.

수조원의 예산이 드는 대형 국책사업이 선거공약으로 제시된 것부터 잘못됐다. 표를 얻어야 하는 정치인들은 타당성, 경제성을 따져보지 않고 사탕발림 약속부터 하게 마련이다. 신공항 같은 파괴력 있는 공약은 더욱 매력적이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그랬고 지난 4.13 총선에서 여야 가릴 것 없이 TK.PK 지역 후보들이 하나같이 신공항 유치를 외쳤다. 집권여당 안에서도, 심지어 친박(親朴) 내부에서도 밀양과 가덕도로 나뉘어 쌈박질을 벌였으니 세상에 이런 모순이 없다.

표 때문에 내세운 공약(公約)은 언제든 공약(空約)으로 전락할 수 있다. 영남권 신공항처럼 (탈락지역의) 표를 잃는 요인이 될 수 있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국가 대계를 위해 검토돼야 할 국책사업이 한낱 정치적 이해타산 때문에 오락가락하고, 이에 따라 민심도 요동치고 국론분열이 초래된다니 말이 되는가. 신공항 파문의 원죄는 결국 포퓰리즘 정치에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박근혜정부는 신공항 선정 과정에서 지역갈등과 분열을 수수방관했다. "외국 전문기관의 평가 결과에 그대로 따를 뿐"이라며 갈등 조정에 있어 무능과 무책임.무사안일을 보여줬다. MB정부의 전철을 그대로 밟았다. 솔직히 김해공항 확장 또한 제대로 추진할지 의심이 간다.

영남권 신공항 문제는 이것으로 종지부를 찍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내년 대선에서 신공항 건설이 또다시 공약으로 등장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신공항은 표심을 공략하는 데 마약 같은 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온 나라가 이 문제로 10년간 소모적인 진흙탕 싸움을 벌였으면 충분하다.
더 이상의 논란은 사절이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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