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 칼럼]

드골이 브렉시트를 봤다면

"英·대륙은 따로 가는게 맞아.. EU는 프랑스·독일이 이끌거고.. 그러니까 너무 오버하지 마"

내 이럴 줄 알았어. 영국놈들 하는 짓이 다 그렇지 뭐. 난민들이 몰려오니까 자기만 쏙 빠지자는 수작 아니겠어. 흥, 갈 테면 가라지. 원래 영국은 유럽이 아니야. 유럽보다 대서양 건너 미국하고 더 가까워. 영미식이라는 게 뭐야. 유럽 대륙식이 아니라는 얘기잖아. 그래서 일찍이 내가 영국이 유럽연합(EU)에 끼어드는 걸 막은 거라고.

내가 프랑스 대통령일 때 영국이 유럽경제공동체(EEC)에 넣어달라고 신청서를 냈어. EEC는 EU의 모태야. 그게 1963년일 거야. 한 방에 거절했지. 당시 내가 텔레비전 카메라에 대고 '농(Non)' 이라고 한 게 화제였어. 그랬더니 4년 뒤에 또 신청서를 내더라고. 또 거부했지.

왜 그랬냐고? 영국은 미국이랑 한편이잖아. 난 두 나라가 싫어. 2차 세계대전에서 우릴 좀 도와줬다고 으스대는 꼴이라니.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만 해도 그래. 말은 서방 군사동맹이지만 사실은 미국과 영국이 제 맘대로 했어. 그래서 내가 1966년에 나토에서 탈퇴한 거라고. 영국은 미국을 위한 트로이의 목마야. 영국이 EU 회원국이 되면 유럽 대륙 꼴이 어떻게 될지는 안 봐도 비디오야.

두 번이나 거절당해서 포기했나 했더니 그게 아니었어. 내가 프랑스 대통령을 그만두길 기다렸던 거야. 그러곤 1973년 또 EU 가입 신청서를 냈지. 나약한 퐁피두! 신청서를 덥석 받더라고. 내가 물러나길 기다린 사람은 미국에도 있었어. 닉슨 대통령하고 키신저 보좌관이 퐁피두를 잘 구워삶더군. 그 덕에 영국은 EU 가입을 거저 먹었어.

그래놓고 2년 뒤에 EU 탈퇴를 묻는 국민투표를 하다니, 아무튼 영국은 못 말리는 나라야. 들어오자마자 나갈 거면 뭣하러 세 번씩이나 졸라대느냐 이 말이야, 내 말은. 그래도 미안했던지 1차 국민투표는 잔류 67%로 집계됐어. 그때 탈퇴로 나왔더라면! 그러면 2016년 브렉시트 같은 충격도 없었을 텐데.

1차 국민투표 뒤에도 영국의 어깃장은 끊이지 않았어. 1992년에 나온 마스트리히트 조약이라고 들어봤지? 마스트리히트는 네덜란드 남동쪽에 있는 작은 도시야. 여기서 EU 출범의 토대가 되는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체결됐어. 유로화를 쓰자는 이야기도 여기서 나왔지. 하지만 영국은 경제주권을 앞세워 유로화에 결사 반대했어. 결국 영국은 파운드를 쓰는 걸로 정리가 됐지. 하여튼 별나게 구는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아니, 누군 자기 통화 쓰기 싫어서 유로화에 동의했나. 사실 가치로 따지면 독일 마르크가 파운드보다 낫지. 그리고 프랑스 프랑도 만만찮은 통화거든.

통합 효과는 화폐만큼 확실한 게 없어. 그리스를 봐. 나갈까 말까 망설이다 결국 주저앉잖아. 유로를 버리고 예전의 드라크마로 돌아가는 게 그만큼 두려웠던 거야. 영국이 처음부터 파운드를 고수한 걸 보면 결국 EU 가입은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심사였던 모양이야. EU도 엄청 짜증 났을 거야. 그러니까 브렉시트 결과가 나오자마자 "이왕 나갈 거면 빨리 나가라"고 밀어내잖아.

역사를 보면 영국과 프랑스는 한배를 탈 운명이 아니야. 프랑스에 성녀 잔 다르크가 있다면 영국엔 영웅 넬슨 제독이 있지. 잔 다르크는 중세 100년 전쟁을 프랑스의 승리로 이끈 주인공이야. '칼레의 시민'이란 로댕 작품 알지? 역시 100년 전쟁에서 영국군과 장렬하게 싸운 칼레의 시민들을 기린 조각이라고. 반면 넬슨은 스페인 남쪽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나폴레옹 함대를 침몰시켰지. 영국 배는 멀쩡하게 살아남았어. 그때 넬슨이 적탄에 맞아 숨진 것은 꼭 옛날 '꼬레'의 이순신 장군을 보는 느낌이야.

브렉시트는 충격이지만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야. 영국과 대륙은 따로 가는 게 맞아. 앞으로 EU는 예전처럼 프랑스와 독일이 이끄는 공동체가 될 거야. 영국은 여전히 미국과 한편이 될 거고. 그러니까 너무 오버하지 마. 이렇게 말하는 당신은 누구냐고? 나는 저 유명한 프랑스의 샤를 드 골.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