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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칼럼] 테마파크 잔혹사

이재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7.06 17:01

수정 2016.07.06 17:01

한국선 규제의 벽에 사업포기
디즈니랜드, 중국 건너가 대박.. 관광인프라 경쟁에서 낙오될라
[이재훈 칼럼] 테마파크 잔혹사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다. 지난달 개장한 상하이 디즈니랜드를 바라보는 심사가 영 편치 않다. 상하이 디즈니랜드가 6조4000억원을 투자한 아시아 최대의 테마파크이자 연간 입장객 1500만명에 연 3조5000억원 매출을 바라보는 '대박' 상품이기 때문이 아니다. 디즈니랜드는 애초 서울에 들어설 수도 있었으나 우리가 이런저런 구실을 대며 차버렸기 때문이다. 중국은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고 사업을 유치했고, 속전속결로 5년 만에 완성했다. 10여년 사이 한국은 '테마파크의 무덤'으로 전락했다.


2003년 정부와 서울시는 과천시 서울대공원 자리를 디즈니랜드 후보지로 정하고 사업을 추진했지만 도무지 진전이 없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각종 규제와 특혜 시비다. 디즈니나 유니버설스튜디오 등 글로벌 테마파크 사업자들은 토지 무상사용과 도로 등 인프라 건설, 해당 국가의 대지분 참여를 요구하게 마련이다. 서울대공원 땅은 테마파크 입지로는 더할 나위 없었지만 수도권정비계획법, 개발제한구역 등에 묶여 개발을 할 수가 없었다. 수조원을 호가하는 땅을 외국 사업자가 마음대로 쓴다는 점에 저항감 또한 컸다. 인구감소와 시장 포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굳이 테마파크를 건설해야 할 필요성이 있느냐는 지적도 많았다. 이명박 서울시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오세훈 시장은 "디즈니랜드 유치의 대가가 너무 크다"고 말하기도 했다.

중국은 우리와 달랐다. 상하이시는 99년간 땅을 공짜로 빌려주고 도로.지하철을 깔아준 데다 국영기업을 설립해 57% 지분투자까지 했다. 글로벌 테마파크를 유치하려면 이런 '특혜'는 기본이다. 일본 오사카와 싱가포르의 유니버설스튜디오, 홍콩 디즈니랜드도 50~60년 토지 무상임대와 지분투자,인프라 건설을 지원했다.

흔히 서비스산업의 꽃은 관광산업이며, 관광산업의 꽃은 테마파크라고 한다.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엄청나다. 경기개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연 매출 3조원짜리 테마파크의 고용창출 규모는 6만2000명에 달한다. 우리가 넋놓고 있는 사이 중국, 일본은 치열한 테마파크 경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에서 5년 내 완공을 목표로 건설 중인 테마파크 수만 60여개다. 9조3000억원을 쏟아붓는 베이징 유니버설스튜디오, 상하이 드림센터(드림웍스 산하), 완다그룹이 개발 중인 10여개 테마파크가 포함된다. 일본은 5조9000억원을 들여 도쿄 디즈니랜드를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다. 이에 비하면 지난달 경기 고양 일산에 착공한 한국형 테마파크 'K컬쳐밸리'는 너무나 왜소하다.

우리도 디즈니랜드뿐 아니라 파라마운트, MGM, 유니버설스튜디오 등 3대 테마파크를 즐기리라고 기대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무엇 하나 제대로 성사된 게 없다. 가장 가능성이 컸다는 경기 화성의 유니버설스튜디오는 수도권 규제와 땅값 정산, 투자유치 문제에 발목을 잡혀 10년째 공전하고 있다. 인천 송도의 파라마운트 무비파크는 금융위기 이후 자금줄이 막히면서 무산됐고, 최근 부영주택이 이 땅을 매입해 도심형 복합테마파크 사업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사업규모가 너무 작아 경쟁력이 의문시된다.

테마파크는 더 이상 내수산업이 아니다. 매우 중요한 관광인프라로 취급되고 있다. 고령화와 인구감소를 겪고 있는 일본이 테마파크 증설에 열을 올리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중국, 일본에 테마파크가 속속 들어선다는 것은 우리의 관광객을 뺏길 수 있다는 뜻이다. 관광객 2000만명 시대를 맞는 한국에 변변한 글로벌 테마파크 하나 없다는 사실이 딱하다. 수많은 유치실패 사례에서 보듯 테마파크 사업은 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가 독자 추진하기에는 걸림돌이 너무나 많다.


정부가 규제를 풀고 지원을 해서 사업을 이끌어야 한다. 박근혜정부는 수도 없이 서비스관광산업 육성대책을 내놓았지만 테마파크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 복안이 없는 듯하다.
이래서는 중국, 일본과의 '관광전쟁'에서 이길 수가 없다.

이재훈 논설위원 ljhoon@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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